앞집 선생님이 키운 호박을 얻어 내가 카빙한, 할로윈 장식

귀엽고 사랑스럽고 무서운 귀신들의 밤

우리 동네의 할로윈은 사흘 동안 이어진 즐거운 축제였다.

29일 목요일 밤, 학교 강당에서 열린 아이들의 할로윈 퍼포먼스가 시작이었다. 나는 아이가 없어 학부모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폴린의 손녀 라일라가 유치부에 다니고 있어 그들 가족과 함께 구경을 갔다.

공연은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볼만했다. 유치부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로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기 이름과 자신이 입은 코스튬의 이름을 재미나게 소개하고, 갖가지 다른 치장의 아이들이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사랑스러운 모습은 어른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모든 무대를 수잔나 선생님 혼자서 지도했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한 학년이 최소 서너 가지 노래와 춤을 보여주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창작품이라니, 거기다 밴드부까지 이끌다니, 참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운티드 하우스, 우후후~!” 하는 으스스 즐거운 노래도 있었고, “스파이더 인 유어 수프, 이휴!” 하는 깜찍하고 재미난 노래도 있었다. 아이들과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 할로윈 축제는 한층 더 흥겨웠다.

가사가 쉽고 위트가 넘쳐서 나처럼 영어가 어눌한 이방인도 스스럼없이 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와 율동이었다. 크고 작은 마음들이 저마다 다른 코스튬을 입고 하나가 되는, 놀라운 예술의 밤이었다.

코스튬을 벗으면 똑 같은 모습의 아이들

갖가지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축소된 미국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벌이며 즐기는 나라, 그게 바로 미국이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건, 그저 각각 다른 코스튬을 입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걸 벗으면 모두가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일 뿐이었다. 공평하고 사랑 많은 신의 아이들…
나는 이 당연한 진리를 모든 미국인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의, 짧은 기도를 올렸다.

다음 날인 금요일 밤 행사에는 가지 않았다. 그날의 행사에서는 아이들에게 캔디를 나눠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할로윈 당일 저녁에 우리 집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직접 캔디를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

올해도 할로윈 캔디는 넉넉하게 준비했다. 헤리포터 초콜릿, 딸기 모양으로 예쁘게 포장된 사탕, 알록달록한 과일사탕을 종류별로 샀다. 집에 있던 막대 사탕까지 더해 네 가지 종류를 아이스크림 컵에 담아 꽃무늬 쟁반에 가지런히 놓는 것으로 아이들 맞을 준비를 마쳤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한다. 아이들은 꽃쟁반 위 예쁜 컵에 담긴 사탕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 엄마(아빠) 주게 하나 더 줄 수 있어요?”
그렇게 욕심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이지.”
나는 기꺼이 컵 하나를 더 내어주곤 했다.

그러나 사탕만 건네는 건 심심한 것 같아, 작은 즐거움도 함께 선물했다.
무서운 코스튬을 한 아이를 보면 일부러 “으악!” 하고 크게 놀라는 시늉을 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이에게는 “어머나, 이렇게 예쁜 공주님은 어느 나라에서 오셨을까?” 하며 잔뜩 추켜세워 주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까르르 웃거나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기왕이면 예쁜 게 좋다. 여름에 먹은 아이스크림 컵을 모아 이렇게…

내가 매년 사탕을 넉넉하고 예쁘게 준비하는 데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아부 섞인 마음이 컸다.
이 동네에서 나는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들어와 사는 유색인이자 하나뿐인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나를 특별히 오래, 그리고 또렷하게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 어릴 때 우리 동네에 한국인 여자가 살았는데, 늘 캔디를 많이 준비해서 예쁜 컵에 담아 주곤 했어.”

훗날 어른이 된 아이들이 저희들의 자녀에게 나를 이렇게 추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최소한 “그 한국인 여자, 참 인색했어”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지는 않더라도 ‘꽤 좋은 이웃이었어’ 라고만 기억해 주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 작은 소망을 담은 마음으로 나는 해마다 사탕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올해도 준비한 사탕을 절반 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사탕이 떨어져서 일찍 불을 끄고 싶지는 않았다.

상상의 날개여 활짝 펴라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할로윈을 챙기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이 날을 그저 아이들에게 남겨질 추억을 만들어주는 날로 여기고 싶다.
어린 시절, 동화를 유난히 좋아했던 나는,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마다 오만가지 상상의 세계를 날아다니곤 했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모험들을 상상 속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내게는 그보다 신나고 즐거운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공상의 잔치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나이를 잔뜩 먹은 지금의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고 행복해진다.

올해의 할로윈 밤에도 내가 만든 호박 초롱불이 밝혀진 현관으로 마법사와 해골, 요정과 공룡들이 사탕을 노리고 우르르 몰려왔다가 스르르 몰려나갔다.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를 외치는 작은 괴물들 앞에서 나는 화들짝 비명을 지르는 겁쟁이가 되었다가, 공주님을 칭송하는 아부꾼 시녀가 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해마다 줄어드는 동네 아이들의 숫자에 문득 서운함이 스미기도 하지만, 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로 이 마을을 활기차게 채워주기를 바라는 내 염원은 줄어들지 않는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향해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보여주기도 하며 사탕을 나눠주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를,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사탕을 사야 하는 풍성한 날들이 계속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 본다.

나를 닮았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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