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힐스의 연중행사, Volksmarch
세계 최대의 조각상에 올라가 쇄골에서 손가락 끝까지 노닐 수 있는 폭스마치Volksmarch. 왕복 10km의 산길을 행진 하는 이 행사는 6월 초와 9월 말, 두 번만 개최되는 특별한 연중행사다.
평소에는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는 미완성 조각상을, 이날만큼은 끝까지 걸어 올라가 얼굴을 대면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날이다.
내게 다섯 번째가 되었을 오늘의 행사참여는, 동행하기로 한 지인의 갑작스러운 치통으로 서운한 포기를 해야 했다. 내 집에서 채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대자연과 신이 허락하는 타이밍은 이토록 묘하게 어긋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지금 그 길을 오르고 있을 이웃에게 오늘의 사진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작년에 보았던 추장의 손가락과 말의 갈기가 그사이 얼마나 더 섬세해졌을지 궁금했다. 비록 오늘 나는 돌산추장의 손가락 끝에 서서 그의 혼이 닿아 있을 까마득한 산등성이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은 이미 이웃들보다 먼저 그곳에 닿아 썬더헤드(Thunderhead) 산에 자욱한 추장의 숨소리와 백인의 교만을 깔아뭉개던 당당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백인 침략자들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 당하던 날, 한 백인 남자가 크레이지 호스에게 조롱하듯 물었단다.
“자, 이제 너희들의 땅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추장, 크레이지 호스는 인디언들의 성지인 블랙 힐스(Black Hills)와 그 너머의 아스라한 지평선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우리 땅은, 내 동족들이 죽어서 묻힌 모든 곳이다.”
땅의 표면은 빼앗겼어도, 자신들의 혼은 죽지않고 이 땅의 영원한 주인으로 군림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의 말은 실현되었고,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그가 가리켰던 그 손, 그 근엄한 모습과 소리를 재현해 내고 있는 게 저 썬더헤드 돌산이다.
죽은 후에 오히려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의 석산으로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돌산에서 깨어나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깊은 바람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까닭 모를 울먹임으로 눈물을 삼키곤 했다. 그가 가리키는 아스라한 동쪽,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내 고향, 내 동족들을 향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거인들


내가 처음으로 이 행진에 참여했던 날, 안내 센터 상영관에서 흑백의 기록 영화를 보았다. 영어가 서툴러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코르착 지올콥스키(Korczak Ziolkowski)라는 폴란드계 조각가의 강렬한 눈빛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조상대대로 지켜오던 러시모어Rushmore 산봉우리가 침략국의 대통령들 얼굴로 화한 것을 본 라코타 인디언 추장의 피울음 같은 간청.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는 것을 백인들에게 알려 주십시오’*라는 편지 한 통에 자신의 명예와 재산을 모두 버리고 황무지로 달려올 수 있었던 예술가. 그는 180센티가 넘는 거구였다고 하는데 스크린 속 내 눈에 비친 그는 강인함만 부각된 왜소한 체구로 보였었다.
거대한 산 전체를 작품의 재료로 삼아, 홀로 곡괭이와 다이너마이트를 지고 허술한 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는 한 남자의 육신은 작아 보였다. 한 인간의 힘으로 산 전체가 재창조 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다. 창조주의 대자연 앞에 인간은 다만 하나의 점이거나 작은 미물에 지나지 못하다는 내 편견때문었을 게다.
한 영웅의 모습으로 돌산을 변모시키기 시작한 작은 창조자는 후손들에게 자신의 창조를 대 물림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돌산이 되어 추장과 함께 영웅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수 많은 인간들은 신이 되고 싶어한다. 육신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름이라도 남기려고 안달을 한다. 존재의 명칭일 뿐인 그 이름을 새기고, 칠하고, 남의 것까지 허물며 눈물겨운 욕망의 몸부림을 친다. 그렇게 제 손으로 억지스럽게 남긴 이름은 시간의 벼랑 끝에서 추락하는 것임을. 오욕으로 박제된 이름은 추락이나 소멸보다 더 가련한 것임을.
그러나 생전의 추장은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도 수줍어 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부족의 축제에서도 결코 앞에 나서지 않았고, 단 한 장의 사진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기묘하고 조용한 영웅이었다. 오직 동족의 자유를 위해서만 용맹하게 싸웠을 뿐,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철저히 무심했던 고독한 전사였다.
과시하지 않으려던 조용한 이름은, 그가 떠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이르러 타인들의 손에 의해 가장 깊고 웅대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스스로 세우고 치장한 이름이 아니라, 자신을 비워낸 가슴에 대지를 품었던 이름이기에 그 웅장한 바위산의 몸으로 영원을 응시하며 존재하는 것이다.
존경은 강요하고 찬탈할 수 있는게 아니다.
갖추어진 이에게 드려지는 타인의 선택이고 추앙이다.
조각상의 주인공인 크레이지 호스 추장은 삶으로 존경을 갖추었고, 조각가의 존경심은 돌산을 깎으며 바치는 역사의 조각이었다.
작은 이들이 거인을 기억하는 법
폭스마치 행진이 지닌 취지와 목적도 추장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우선, 그 거대하고 숭고한 역사(役事)가 정부의 지원금이나 거대 자본의 힘을 전혀 빌리지 않는 게 그러하다.

국가의 돈을 받으면 프로젝트의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단호히 거절한 조각가. 그의 뜻에 따라 오직 행진에 참여하는 평범한 대중들의 발걸음과 기부로만 산을 깎아 나가는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이 내는 소액의 입장료와 돈을 대신하는 통조림 깡통들은 인디언 원주민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소외된 지역사회를 돕는 따뜻한 온정으로 전액이 쓰여진다.
결국 이 행진의 진짜 목적은 웅장한 볼거리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방인의 발걸음을 모아 상처 입은 인디언의 역사 위에 ‘평화와 연대의 순례길’을 내자는 것에 있다.
강제로 빼앗아 국가의 힘으로 새긴 옆 산 러시모어 조각과 달리, 이 산은 대중의 선한 마음이 모여 스스로 자라나고 완성되는 예술의 산인 것이다.
내가 매년 고된 행진에 참여하려는 이유도 사실 거기에 닿아있다. 내 발걸음은 그저 인파에 휩쓸려 볼거리를 쫓는 관광객의 유희만은 아니다. 평생 자신을 숨기려 했으나 끝내 바위산으로 부활하는 위대한 영혼을 향한,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는 선한 목적을 향한, 나만의 정중하고 겸허한 존경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오른쪽 비탈길을 숨 가쁘게 걸어 올라가 마침내 그의 쇄골을 딛고, 쭉 뻗은 팔을 밟고 나아가 검지끝에 설 때마다, 아득한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혼령을 마주하며 마음속으로 정중한 인사를 건넨다.
“추장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땅 블랙힐스에 감사한 마음을 심으며 살겠습니다.”
어쩌면, 조상의 피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한 작은 이방인이 진짜 주인에게 올리는 거룩한 문안인사다. 영어는 서툴고 육신은 가녀릴 망정,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겠다는 다짐만큼은 매끄럽고 진중하다. 어차피 그의 언어도 영어는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뭐 볼 게 있다고 가고 또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산과 들을 가고 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질문이었다.
자연이 매 순간 변모하듯 예술도 볼 때마다 달라졌다.
그리고, 조상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대를 이어 묵묵히 산을 깎고 다듬는 조각가의 가족들에게 어쩌다 들리는 발걸음이 작으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 길에는 있었다.
왼손잡이 사나이

엉뚱한 소리같겠지만, 추장님은 왼손잡이다.
나는 왼손으로는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철저한 오른손잡이다. 게다가 작년에 부러진 손목이 제대로 아물지 못한 바람에, 내 왼손은 그저 오른손을 거들어주는 왜소하고 무력한 보조 부위에 불과해졌다.
저 바위산의 크레이지 호스가 온 힘을 다해 지평선을 향해 쭉 뻗은 팔이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이라는 사실을 새삼 가만히 되짚어보면서 묘한 전율을 느꼈다. 내게 가장 약하고 불편한 부위가, 저 산 위에서는 꺾이지 않는 인디언의 자존심을 가리키는 가장 강인한 이정표로 서 있다니… 어쩌면 신은 내게 가장 약한 부위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신념을 바라보라고 나를 네 번이나 그곳으로 가보라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번 행사에서 산을 오를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을 올라가 추장님을 만나고, 그의 손톱이 될 벼랑끝에 서서 그가 찾으려는 그 무엇을 찾을까 하고 까마득히 목을 늘리던 그 순간을 가슴 벅차게 추억한다.
영웅의 손톱 끝을 문지르며 영혼의 광을 내려는 바람의 맛과 색깔을 음미하다가, 팔 너머 오른편에 설치된 아찔한 계단을 타고 내려 터널 앞으로 걸어 내려오던 그 길이 그립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아득히 높아진 미완의 거대한 조각상은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있었다.
기록 영화 속에서 다이너마이트를 지고 나무 계단을 오르던 조각가 코르착, 한 점의 왜소한 존재에 불과하던 그 사람이, 자신이 깎아 낸 꿈의 크기만큼 거대한 형상이 되어 추장과 나란히 서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내 환시였다. 그러나 그가 품은 예술혼의 스케일은 웅장한 대자연에도 삼켜지지 않고 도리어 산을 제 크기만큼 넓혀 영원으로 스며있는 것이었다.
나의 육신도 지워지고 사라지겠지만, 대지의 심령을 머금은 신념 한 조각쯤은 저 추장님과 조각가 주변의 산자락에 작은 바람으로나마 흐르기를 기원했었다.
다가오는 봄 행진에는 꼭 참여할 것이다. 그날은 아마 추장님의 다듬어진 손톱위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