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에 대한 명상

“딘이 너한테 얘기했니?”
앞집의 선생님이 물었다.
“뭘?”
내가 반문했고, 선생님이 얘기를 계속했다.
“어제 네가 외출했을 때, boy보이들이 펜스 열고 나와서 아주 축제를 벌였어. 두 녀석이 장화 신고 돌아 다니는데, 딘이 데려와 씻기고 들여보냈어…”
“그 새 그 난리를 쳤어?”
어이가 없었다.
세 시간도 못 되는 외출이었다. 그 사이에 또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차고 문 아래에는 녀석들이 바깥 구경은 하되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도록 안전 펜스를 설치해 두었다. 걸쇠까지 달아 놓았으니 내 눈에는 충분히 안전해 보였다.
하지만 그 방면에 있어서는 꼴이형제가 늘 내 계산보다 한 발 앞섰다.
녀석들은 내가 집에 있으면 가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얌전한 아이들처럼 살랑살랑 애교와 재롱을 떤다. 그러나 내가 나가기만 하면 바로 상황이 달라진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비밀 작전이 시작된다.

내 상상이 아니다. 어느 날 외출하는 척 훔쳐본 녀석들의 실체다.
“문고리부터 벗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문고리가 달린 펜스 기둥을 흔들기 시작한다. 앞뒤로, 아래 위로 번갈아 가며 흔든다.
드디어 고리가 벗겨진다.
“네가 틈새를 벌려. 내가 먼저 나갈게.”
날씬한 콩이가 틈새를 벌리면 오동통한 똘이가 빠져나간다.
밖에 나간 똘이의 도움을 받아 콩이는 더 쉽게 빠져나간다.
뒷마당의 철사망 울타리도 그런 식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가끔 역할은 바꾸어도, 협력하여 뜻을 이루는 건 한결같았다.
둘이서 얼마나 죽이 잘 맞는지, 여간 단단하게 잠그지 않으면 십중팔구 탈출은 성공이었다.

그날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펜스를 열고 뛰쳐나간 녀석들은 언덕의 풀밭과 흙더미 위를 마음껏 누볐을 것이다.
비가 온 뒤라 사방은 질척거렸고 녀석들의 발은 금세 진흙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녀석들을 데리고 언덕에 오른다. 이슬 젖은 언덕길을 한 바퀴 돌아오면 꼴이형제의 손발은 까만 가죽을 두른 것처럼 보였다.
“아이구, 보이들이 부츠를 신었네. 벗기려면 엄마가 힘들겠네”
이웃들은 형제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저 진흙투성이 발이라고, 녀석들 꼴이 엉망이라고 하며 실없이 웃었더랬다.
그들을 씻기면서도 흙을 씻어낸다는 생각 뿐, ‘장화를 벗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웃들은 진흙 묻은 강아지 발을 보고 장화나 부츠를 저절로 떠올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황야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카우보이 부츠를 신는다. 작은 모자와 조끼, 가죽바지, 벨트까지 갖춘 모습을 보면 만화영화 ‘토이 스토리’의 인형처럼 앙증맞고 귀엽다. 그러니 강아지의 진흙 발에서도 카우보이 부츠가 보일 것이다. 반대로 나는 부츠와 거리가 먼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상상도 멀었던 것인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날 녀석들은 내가 없는 사이 무단 가출에 성공했고, 장화를 신은 작은 카우보이들이 되어 이웃집 뒷마당과 언덕을 휘젓고 다닌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딘에게 붙잡히고 장화를 벗어야 했던 것이다.

마침 밖에 나와 있던 딘에게 물었다.
“어제, 우리 애들 장화 벗기고 안에 들여놨다면서?”
딘이 웃으며 말했다.
“어, 애들이 막 투덜거리더라.”
“투덜거려?”
“더 놀아야 되는데 왜 잡아 들이냐고, 입을 비쭉 내밀고 눈도 흘기고 그러던데?”
큭큭큭 웃는 딘을 따라 나도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덩치 큰 어른이 20 파운드 남짓의 꼬맹이들을 붙잡고 실랑이 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요란한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 동네 집들은 대부분 온천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들이 마당에 있다. 한겨울만 아니면 강아지들 목욕도 마당에서 시킨다. 나의 이웃도 호스로 물을 뿌리고, 꼴이들은 헤헤헤헤 좋아서 웃었을 것이다.
사람을 물 줄도 모르고 으르렁거릴 줄도 모르는 순둥이들이라 이웃들에게 더 이쁨을 받는 아이들이다.

나는 딘의 농담에 있는대로 목청을 높여 깔깔대며 웃었다.
크게 웃어 줄수록 더 큰 감사의 표현이 될 것만 같았다.

궂은 날은 이보다 훨씬 길고 두꺼워진다
맑은 날의 장화

나의 침묵, 너의 침묵

사실 나는 엊그제 노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폭스 마치 행진에 참여할 계획이 무산된 후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녀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작년에 비해 얼마큼이나 진척이 있었는지 보고 싶다고, 이유도 얘기했다.
그랬는데 답장이 없었다.메시지를 못 봤는지, 봤는데 잊어버렸거나 귀찮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게 뭐 대수라고 싶어 은근히 토라지던 참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딘 얘기를 들으며 민망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 크게 웃었다.
진흙 범벅이 된 아이들을 붙들어 씻기고 챙겼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이웃들이었다.
앞집 선생님이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생색을 내도 좋을 수고였지만 없었던 일처럼 시치미를 뗐다.
내가 부탁한 사진에 대해 침묵한 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내가 서운해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 행사는 왕복 10 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행진이었다.
그 나이에 참여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해마다 두 번씩 참여하는 사람들이라 굳이 사진을 찍을 이유도 없었다.|
아예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행진의 목적은 사진이 아니라 걷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조각상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서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거리였다.
행진날이 아니면 조각상에 올라갈 수는 없지만 사진은 얼마든지 찍을 수 있다.

나는 영어가 부족해서 종종 침묵 속으로 숨어들었다.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물쩡 넘기고, 설명이 길어질 것 같으면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랬으면서도 이웃들의 별것 아닌 침묵에는 의미를 부여하며 서운함을 동원했다.
답하지 않는 이유가 얼마든지 많을 텐데 토라질 이유부터 앞장세웠다.

곤히 잠든 꼴이형제를 보며, 검은 장화를 신고 천방지축 뛰어놀던 녀석들을 상상하고, 그들을 세워 놓고 물을 뿌리던 이웃을 생각했다.
입꼬리에 매달린 웃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침묵에는 말보다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무관심인 것 같기도 한 침묵 속에는 조용한 선의와 수고와 친절이 있고, 자랑하지 않으려는 겸허가 자리하고 있다.

나의 장화 신은 강아지들을 통해 나는 성숙한 이웃의 선한 침묵을 발견하고, 나도 그런 선한 침묵의 친절을 배워야 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가을을 마시는 열매들과 말썽거리를 찾는 꼴이들

댓글 1개

  1.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집에선 정말 솔직한 작가님을 만나네요. 역시 집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지난번 브런치에선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 전해집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