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늘에 뜬 한국 달
내일이 추석이라고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한국의 추석명절 한가위란다.
Thanks Giving땡스기빙이라고 하면 칠면조가 따라오지만, 한가위라는 이름 뒤에는 둥그런 보름달이 떠 오른다.
다코타의 하늘에도 한가위의 둥그런 보름달은 매년 떠 올랐다.
내집 앞마당에서 떠 올라 뒷마당으로 넘어가는 달을 나는 해마다 만났다.
달마다 뜨는 보름달과 반달과 조각달 들도 많이 만났다.
불빛이 없는 뒷마당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새카매서 달과 별이 섬뜩하도록 선명했다.
하늘이 잘 보이는 넓은 유리창 앞 바닥에 주저앉아, 흘러내리는 것 같은 그 빛들을 오래도록 우러르곤 했다. 그토록 선명한 밤빛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큰 행복이었다.
둥그렇게 떠 오르는 보름달 속에는 잊히지 않는 얼굴 하나가 같이 떠올랐다.
K권사님의 얼굴이었다.
1960년대 초에 도미하셨다는 권사님은 특별히 다정하고 선량한 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얘기만 들어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그런 어른이었다.
그 분이 한가위 무렵에 들려주신 어느 날의 얘기는 지금도 내 가슴 가운데에 달빛처럼 머물고 있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외국인 가득한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 열 아홉 살의 권사님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모국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한국인 없는 군인부대 근처의 작은 집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짧은 기지촌 생활에서 배운 토막 영어는 남편도 겨우 알아듣는 콩글리쉬여서 누가 찾아온다 해도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대중교통수단이 전무했던 미국의 시골은 자가용이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어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했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며칠을 그렇게 지내야 했다.
사람도, 음식도, 거리도, 산천도, 모두가 낯설기만 한 곳에서 남편바라기로 사는 삶은 눅눅하고 어둑했다.
피폐했던 고국산천이지만 못 견디게 그리웠다. 짐스럽기만 했던 부모형제도, 토닥거리며 다투었던 동무들도, 모두들 가슴 아리도록 그리운 얼굴들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밤, 무심코 창문밖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그녀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달이다! 한국달이다!”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마당 가운데 서서 저만치 떠 오른 달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쟁반같이 둥그런 보름달,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그 달이 미국 하늘에 둥실 떠 있었다.
반가움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으며 힘껏 뒤꿈치를 들어 올려보았다.
토끼와 떡방아에 손이 닿는 것 같기도 했다.
권사님은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는듯, 눈물 같기도 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도 보름달 뜨면 자세히 쳐다봐. 한국 달하고 똑같이 생겼어. 참말로 똑 같다니까!!”
권사님은 대단한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가 아끼는 제자에게 자랑하듯 열심히 얘기했다.
농담인가 싶어 웃음을 터트릴 뻔하다가, 보름달처럼 빛나는 그 분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얼른 숨어버렸다.
권사님이 달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미국에서 만난 가장 애절하게 아름다운 동포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가끔 전쟁의 참상을 회상하며 치 떨리는 고초를 얘기하는 동포들이 있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의 울분과 이민 초기의 절절한 고독은 내 가슴도 아프게 하는 슬픈 이야기들이었다.
권사님의 보름달에도 아픔과 외로움이 있었지만 환한 감동과 따뜻한 빛이 스며 있었다.
“엊저녁에 자세히 봤는데, 정말로 한국달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내 말에 권사님은 무척 반가워했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네, 맞아요.”
나도 덩달아 즐거워 져 우리는 오래 달빛속에 머물렀다.
나도 진작에 미국 하늘에 뜬 한국의 보름달을 본 적이 있었다.
플로리다 뒷마당의 호수에 뜬 보름달이었다.
그러나 계수나무와 토끼가 아니라 아침이슬에 흠뻑 젖었던 그리운 이의 모습이 담긴 달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밤새워 산길을 달려와 준 진이의 모습이었다.
“호수에 잠긴 달은~~~ 당신의 고운 얼굴~~~”
언제나 떠오르는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권사님의 한국달을 만난 후부터는 계수나무와 토끼의 방아와 절구공이가 있는 달이 호수에 잠겼던 진이의 얼굴과 함께 떠올랐다.
이번 한가위에도 그 달이 뜰 것이다.
고향의 동산에 뜨던 그 쟁반같이 둥글고 거울같이 밝은 달은 한국과 미국의 모든 하늘에 떠 오를 것이다.
아니다, 고향의 하늘을 먼저 밝히고 난 다음날 미국으로 건너와 딱 그만큼의 환한 빛으로 다코타의 하늘을 밝혀줄 것이다.
올해는 나도 권사님처럼 눈물겨운 반가움으로 그 달을 보려고 한다.
달은 하나 뿐이라든가, 한국 달이나 미국 달이나 같은 것이라는 따위의 대수롭잖은 상식은 다른 행성에나 머물게 하고, 블랙힐스에 뜨는 새실의 달을 대수로운 경이로 바라 볼 것이다.
“달이다! 새실에 뜨던 그 달과 똑같이 생긴 달이다!”
그렇게 반가움에 겨운 소리를 크게 외쳐 볼 생각이다.
그러면 달은 까만 언덕을 타고 내려와 그리운 그 시절의 둥근달로 내 가슴속에 다시 떠 오르고, 그 밤은 그렇게 포근하고 다정하게 채워 질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