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동물
폴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운타운에 홈커밍 퍼레이드를 보러 가겠느냐고 했다.
축구시합 개최를 앞 두고 학생들이 벌이는 행진이었다.
겨우 1 Km 의 시내를 행렬이 관통하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허망한 볼거리였다. 구경하러 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보다 짧은 행진이었지만 폴린과 이웃들은 해마다 참석을 했다.
아이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였다.
폴린이 나를 데리러 왔다.
장거리 여행이 아니면 자동차 운전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그녀는 늘 자신의. 차에 나를 동승 시켰다.
겨울이 긴 다코타의 빙판길이 두려워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어지간하면 차를 운전하지 않는 나를 이웃들은 이해하고 도왔다.
아리조나에서 왔다는 제리는 겨울 없는 동남부에서 오래 살았다는 나의 겨울 공포를 특히 공감했다.
그런 그녀와 폴린은 내가 동네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벗들이 되었다.
저녁 5시에는 fairground야외 행사장에서 교회 가족의 수술비 모금을 위한 행사가 있다고 했다.
후원 받은 물건과 음식을 판매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그런 행사는 전에도 종종 참석해 보았던 행사였다.
축하 받을 일에는 빠져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참석하자는 게 내 신조이기도 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아가씨가 그런 일을 겪는데 모른 척하는 건 무정한 짓이었다.
최소한의 금액을 보태더라도 참석자의 숫자를 보태는 것은 환자에게 격려가 될 것이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아가씨는 참석해 줘서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평소의 그녀는 내가 싫은 감정을 가질만큼 무뚝뚝하고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오늘의 살가운 모습은 차라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늘 오후는 그렇게 지나갔다.


군계일학/ 군백일색 群白一色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슴이나 버팔로처럼, 같은 종들이 무리 지어 집단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집단생활을 영위하려면 규칙과 소통과 상호 존중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돌연변이 외지인이었던 나는 상호相互가 아닌 완전한 개인이었다.
백인들의 집단에 끼어든 유일한 유색인, 군백일색 群白一色이라 쓰고 군계일학이라 읽는다고 시시껄렁 친구들을 웃겼다.
그러나 그게 순전한 우스개소리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다만 색깔 있는 피부때문에 열등한 존재가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결심이었다.
그러기 위해 저들의 규칙과 문화와 풍습을 알고, 신뢰와 상호존중을 쌓아야 하리라 생각했다.
보수적인 이 동네는 종교의 영향력과 지배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까지 합쳐서 7백명 남짓한 동네에 크고 모양 좋은 교회 건물들이 몇 개나 서 있는 걸 보면서였다. 어떤 교회를 선택하느냐는 내게 대단히 중요한 첫 번째 과제라는 생각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들린곳은 은행이었다.
계좌를 만들면서 은행원 신디에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녀에게 가장 괜찮은 교회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그녀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전부 다 좋다’ 고 대답했다. 성당과 성공회를 포함해 건물이 있는 교회가 다섯인데, 직접 예배에 참석해보고 내가 결정하라고 했다.
당연히 자신이 소속된 교회를 추천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당혹과 의혹을 동시에 느꼈다.
혹시 내가 유색인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낀 나의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다섯개의 교회들 사이에는 작은 갈등도 없었다. 수시로 공원에서 합동예배를 가지며 화합을 다지는 교인들이었다. 이 동네의 규칙이자 문화였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노인센터(senior center)였다.
내가 60이 넘은 나이라고 했더니, 회원등록을 하겠느냐고 총무가 물었다. 나는 기꺼이 등록을 하고 회비를 냈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점심시간에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돕겠다고 했다.
나는 미국에서도 여러가지 봉사활동을 해왔다.
노숙자, 장애인, 노인, 어린이를 위한 시설들, 그리고 청소년 교화소와 박물관까지, 기회가 주어지면 뭐든지 했다.
학점을 위해서, 그리고 학자금을 지원해 준 국가에 대한 보답으로 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미국을 경험하고 다양한 계층의 언어를 익히자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 여러가지 장소들 가운데 가장 편한 곳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이었다.
연로한 부모님께 태어나고 자란 나는 노인들과 가까워지고 사랑받는 기특한 재주가 있었다.
이 동네의 어른들도 쉽게 마음을 열고 나를 좋아해 주었다.
총무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내가 자식 또래의 젊은이로 믿었다. 서로에게 편하고 좋은 일이었다. 젊은(?) 내 도움이 노인의 것보다는 아무래도 편할 것이었다.
하얀 가족들

엄마도 생겼다. 84세의 루시였다.
내 생모가 돌아가셨던 꼭 그 나이의 미국엄마가 생겼다는 건 의미 있는 인연이었다.
도도하면서도 다정한 성품부터 여러모로 내 생모와 닮은 데가 많은 어른이어서 정이 갔다.
나는 엄마 루시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고 마을 행사와 축제에도 같이 다녔다.
오래지 않아 많은 사람들과 서로 아는 체 인사를 주고받는 동네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에는 동양인 싱글녀가 이런 촌구석에 들어온 이유를 멋대로 상상하던 사람들이었다.
도망 다니는 범죄자인가 의심하여 신원조회도 하고, ‘남자를 찾느냐’고 물으며 경계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보니 상당히 괜찮은 남편과 살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빼앗길까봐 두려워 할 만한 남편이라고 놀리는 내 말이 싫지 않은 듯 그녀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내가 특히 신경을 쓴 것은 투표였다.
대통령이나 주지사 선거는 물론, 시장이나 집단의 리더를 뽑는 선거에도 알뜰히 참석을 했다.
이해가 되든 안되든 후보들의 토론이나 연설도 경청했다.
나도 너희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성실한 시민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나는 여전히 군백일색群白一色 외톨이지만 어둡고 혐오스러운 존재는 이제 아닌 것 같다.
작년에 손목을 다쳐 텃밭을 가꾸지 못한 나를 위해 자신들이 수확한 채소를 갖다 주고, 직접 잡은 생선과 사냥한 동물의 고기를 나눠주는 이웃도 있었다. 그냥 주는 게 아니라 깨끗이 손질해서 지퍼백에 담아서 주엇다.
자신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 나, 자신들의 여자들처럼 날것의 물고기와 야생동물을 손질할 줄 모르는 약한 여자로 대우하는 것이었다.
무단가출을 한 강아지들을 찾아 나서고, 내가 장시간 외출을 하면 돌봐주기도 헸다. 여러 집에서 먹여 준 간식에 과식을 한 아이들이 배탈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고맙고 따뜻한 근심이었다.
나는 이 하얀 무리들 속에서 거부 당하는 색깔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거부하는 저들의 몸짓을 나도 거부하며, 그것이 수용과 화합이 되도록 노력한다
저들과 내가 같이 섬기는 예수님의 세 가지 가르침을 염두에 둔다.
이웃을 먼저 사랑하고, 먼저 대접하고, 판단이 아닌 존중을 하라는 가르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