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옥수수가루 같은 부와 가난

어린아이는 가난을 돈으로 배웠지만,
삶이 가르쳐 준 가난의 기준은 달랐다.

가난한 아이들

70원 외상으로 혼쭐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집이 가난한 사람은 손들어라.”
어느 날 아침수업 시작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꽤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나도 번쩍 손을 들었다.
우리집이 가난뱅이라는 걸 아는 가게 집 아이가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 아이를 보지 않으려고 들어올린 내 팔만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척 가느다란 팔뚝은 가난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 내려라.”
선생님은 누가 손을 들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에 든 교과서만 보면서 곧 우리들의 손을 내리게 했다. 그리고 하얀 분필을 집어 오늘 배울 내용을 흑판에 쓰면서 말을 계속했다.
“방금 손 들었던 사람들은, 보자기 가지고 급식소 가서 강냉이 가루 받아가라.”
아이 하나가 재빨리 책을 풀어낸 보자기를 들고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이따가, 점심 시간에 가거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무라는 어투는 아니었다.
아이는 아쉬운 듯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점심 시간이 되자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 책보자기를 들고 급식소로 달려갔다. 나도 보자기를 들고 그 아이들을 따라갔다.
옆으로 길게 트인 급식소 창구 앞에는 많은 아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상급생 언니들이 정방형의 나무 됫박에 옥수수 가루를 퍼 담아 아이들의 보자기에 부어주고 있었다. 하필이면 내 언니도 그 속에 있었다.
나를 본 언니가 후다다 밖으로 뛰어나와 주먹으로 내 등을 팡팡 두둘기며 다그쳤다.
“이 지지배야, 우리가 가난하나, 엉? 가난한 애들 주라는 건데 네가 왜 여길 와? 빨리 못 가?!”
나는 속으로, “우리 가난한 거 맞잖아.” 대꾸했지만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언니한테 된통 두둘겨 맞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배급을 하고 있던 언니 친구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얘, 가난하다고 왔겠니, 이게 뭐 별건가 하고 한번 받아먹고 싶었겠지.”
그러면서 내가 들고있는 보자기에 옥수수가루를 담아주었다.
언니가 보자기를 나꿔채 절반 넘게 푹 쏟아내고 조금 남은 가루 보자기를 내게 주며 으르렁거렸다.
“한 번만 더 왔다간 진짜 가만 안 둔다, 알았지?”

나는 언니가 무서우면서도 바보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가난한 거지인데, 부모님에게 속아서 그걸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옥수수가루

집에 돌아온 언니는 부모님에게 고자질을 했다.
“저 지지배가 글쎄, 급식소에 강냉이가루 타러 왔지 뭐야. 가난한 아이들 타 먹으라 그랬는데, 저게 그 아이들 하고 같이 왔어. 내가 진짜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 편인 아버지는 급식소 언니들과 같은 말을 하며 언니를 나무랐다.
“고마해라. 어린 것이 그게 뭔 별 건가 하고 가 봤구만, 뭘 그리 시겁을 떠노.”

그날 저녁 엄마는 그 옥수수 가루로 떡(빵)을 쪄 냈다.
쫀득하니 맛도 있었지만 고운 연노랑의 색깔이 한층 입맛을 돋구었다.
그러나 반 됫박도 안 되는 분량의 가루로 만든 옥수수 빵은 한 한 조각씩 밖에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가 말했다.
“죽을 쒀서 끼니를 때우라는 것인데, 우리는 별식으로 먹으려고 떡을 쪘다.”
아버지가 엄마의 비위를 맞추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맛이 좋네.”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으며 엄마는 계속했다.
“끼니는 날마다 먹어야 되는 것이고, 별식은 한 번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는 이런 거 받아오지 말거라, 알았제?”
나는 옥수수 떡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픈 사람들 끼니를 뺏아 먹으면, 그건 살로 안 가고 평생 목에 가시로 걸려있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의도적으로 떡을 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늘 잡곡밥만 먹을만큼 궁했었다. 그걸 죽으로 쑤면 두 끼는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한번의 간식으로 만들어 나보다 못한 사람의 것을 찬탈하지 말라는 주의를 시킨 것 같았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족들 중 오직 나 하나라는 사실도 각인 시켜주었다.

부와 가난이란 옥수수가루 급식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어진 제 몫으로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받아 특식을 만들어 부른 배를 더 부르게 하는, 급식 같은 것. 철부지였던 그날의 나처럼 양심부지인 어른들 때문에 세상은 아직 덜 공평할 수도 있겠다.

그때의 나는 먹을 것이 없어서 가난하다고 생각했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미국에서도 가난을 느낄 때가 있었다.
부와 가난의 척도가 먹을 것에서 시각적인 풍요로 옮겨진 때문이었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래왔었다.
어느날, 꼭 필요치 않은 너무 많은 것들에 둘러 쌓인 나를 보면서 답답해졌다.
이제 가진 것들을 추리고 나누고 버려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사들여야 할 것은 강아지들과 내가 먹어야 할 음식 뿐이라는 것을.

나는 밥이든 죽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긴 하지만, 밥은 꼭 있어야 된다.
잘 지은 밥 한 그릇만 있으면 반찬은 무엇이든 괜찮다.
밥은 찰기가 있고 뜸이 잘 든 것이어야 한다. 미국 식당에서는 그런 밥을 만나기 어려워 집에서 해 먹거나, 가끔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한국식당이나 교민의 집을 찾는다.

내가 장을 볼때 가장 많이 사는 게 쌀이다. 한달에 15 파운드는 거뜬히 먹는다. 그래봤자 립아이 스테이크 한 개 값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식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창조주가 주신 축복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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