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미국의 빈곤한 부자

세상보다 먼저 알았던 빚의 무게

미국에서 44개 주를 돌아다녔다고 하면 금 수저 물고 태어났거나 돈벼락 맞은 부자일 것으로 짐작한다.
남한테 구차한 소리를 하거나 빌리려고 하지 않으니, 아쉬운 거 하나 없는 백만장자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백만 불만 투자하면 한 달 이자 십만 불씩 꼬박꼬박 챙겨 줄게요.”
그렇게 속 빤히 보이는 소리를 들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돈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정말로 없다고 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자를 많이 주겠다는 사람은 물리칠 수 있었지만 몹시 절박한 소리 하는 사람은 물리치기 어려운 적수였다.
돈을 빌려주고 낭패를 당한 적이 몇 번이었다.
그래도 아직 웃고 사는 걸 보면 내가 부자이긴 한 모양이다 .

나는 돈이 있는 부자는 아니다. 갚아야 할 금전적 빚이 없어 여유로워 보일 뿐인 부자다.
당연히 나도 부자가 좋다. 가난뱅이는 싫다.
때문에 나는 절대로 빚을 안 지려고 한다.
내가 정의하는 부자는 남에게 꾸지 않는 것과, 갚아야 할 빚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시골에 들어왔다. 집과 자동차를 빌리지 않고 장만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공과금과 전화료 말고는 일정한 지출이 없는 생활은 가볍고 자유롭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게 있어도 필요하지 않으면 안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몇 가지만 제외하고.
지난 주에 배달된 새 자판기 같은 것들이다.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꼭 갖고 싶은 것이었다. 이 정도는 빚을 내지 않아도 되는 데다가 지출한 금액 몇 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이런 것들은 예외로 둔다.

하여간 나는 빚이라는 것의 무서운 정체를 아주 어릴 적에 알았다.
나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무서운 족쇄라는 걸 일찍이 경험했다.
세상을 알기 전에 나는 그걸 먼저 알았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초반, 시골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게 없었다.
산촌이었지만, 나무도 흙도 그리고 물도 빈약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끼니를 건너 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허한 속의 그 아이들은 피폐한 자연을 뒤져 찔레순, 삘기, 참꽃, 산딸기 같은 것들을 찾아 군입질을 했다. 그러나 종류는 많았지만 양은 터무니없이 적어 아이들의 입은 늘 곤궁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주전부리는 껌이었다. 한번에 꿀꺽 삼켜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입을 놀릴 수 있는 마술 같은 주전부리였다.
그러나 어른들도 구경하기 어려운 돈, 그 돈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었던 껌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귀한 것이었다.
장터에 사는, 소위 ‘있는 집’아이들이 씹다가 뱉은 껌을 주워서 씹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몇 날 며칠을 씹고 다녔다. 잘 때는 그걸 숟가락이나 벽에 붙여 갈무리했다가 다음 날 떼어서 씹는다고,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듯 얘기했다.
먼지와 손때가 묻어 새까맣게 더러워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딱딱 소리까지 낼 줄 아는 자신의 재주를 으시대기까지 했다.

학교 공부시간에도 껌 씹기는 계속되었다. 너무 요란한 소리만 내지 않으면 선생님도 그냥 묵인해 주셨다.
어느 날, 옆에 앉은 아이의 껌 씹는 소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나는 학교 앞 구멍가게로 달려가 주인 아저씨께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저씨, 껌 한 개만 외상으로 주세요.”
주인은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안된다.”
처음 들어본 싸늘한 한 마디였다. 겨울 밤의 북풍보다 마음 시리게 하던 차가움이었다.

그런 며칠 후, 몇 명의 아이들을 따라 학교 옆에서 비슷한 가게를 하는 반 아이의 집에 가게 되었다.
같이 간 아이들은 장터나 학교 부근의 나름 부유한 집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이것저것 과자들을 사 먹으며 웃고 떠들고 즐거워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몰래 침을 삼키고 있는 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어금니도 꽉 깨물었다.
“너도 먹어. 돈 없으면 외상으로 줄게.”
가게 집의 딸아이가 말했다.
세상이 확 밝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들어 본 가장 달콤한 말이었다.

달콤한 독약

그러나 그것은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독약이 되었다.
70원쯤 되었던 그 외상값은 망망대해처럼 깊고 까마득한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묘안을 찾아냈다. 미술시간에 두꺼운 도화지를 가져가야 된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이 덕지덕지 묻은 내 어눌한 거짓말에도 엄마는 말 없이 20원을 주셨다.
10원짜리 얇은 도화지를 사고 나머지 10원으로 외상값을 갚으려고 했다.
가게 집 아이는 의아하게 동전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오늘은, 10원만 갚고, 다음에 더 갚아 줄게.”
그러자 그 아이가 말했다.
“느네 집 가난하구나?”
“안 가난해. 그냥 돈이 없는 거지.”
“돈 없는 게 가난한 거야.”
“아니야. 밥 굶는 게 가난한 거잖아. 우린 안 굶어.”
“굶는 건 거지야.”
내가 입을 다물자 아이가 비웃듯이 덧붙였다.
“돈 없으면 가난뱅이고, 가난뱅이는 거지라고, 이 바보야.”

그때부터 아이의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를 함부로 대했다. 마음에 안 들면 돈 갚으라는 말로 기를 죽였다.
다른 아이의 귀에 대고 나만 들리지 않게 소근거리다가 나를 돌아보며 키득대기도 했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은 나를 무척 작아지게 했다. 신체적으로 가하는 폭력보다 고통스러웠다.

나는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조용한 시골뜨기라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기도 한 아이였다.
게다가 리더십이 뛰어난 언니 덕분에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학교생활은 평탄하고 즐거웠었다.
그러나 70원의 외상은 그런 학교생활을 뒤헝클어 놓았다.
빨리 갚아버리고 싶었지만 미술시간은 일주일에 단 한 번, 일주일에 10원 밖에 갚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세 번째 거짓말에 이르자 엄마가 드디어 의혹을 드러내는 바람에 30원에서 더 이상 갚을 길이 없어졌다.

그 이후의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다 갚았을 것이지만 어떻게 갚았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외상이나 빚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것은 분명했다.
없으면 안 사는 게 어렵지 않았다. 천천히 갚아도 된다거나 심지어 안 갚아도 괜찮다며 유혹을 해도 외상은 하지 않았고, 거저 받는 것도 조심했다.
‘외상은 소도 잡아 먹는다’ 는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기 전에, ‘외상은 나 자신을 잡아 먹는다’는 것을 체험한 나는 빚 없는 삶을 명심했다.

부족한 것 없는 Homeless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겐 빚이 있는 걸로 안다.
가장 많은 게 카드 빚이고, 다음이 주택 융자, 자동차 월부금 순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빚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다.
은행 빚을 얻어야 신용 점수를 쌓고, 신용점수는 미국생활의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빚 없이 산다.  
이 집을 살 때 지인에게 며칠만 쓰겠다고 돈을 빌린 적이 있지만 약속한 날짜보다 훨씬 빨리 갚았다.
크레디트 카드 두 개를 사용하지만 내 신용점수는 최상급이다.

나는 돈이 안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미루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며 산 것은 아니다.
내 궁극의 꿈 세계일주는 겨우 7개국에 머물렀지만, 대륙 일주는 거진 다 했다.
주립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50평생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공부의 한도 풀었다.
다만 좋은 호텔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관광을 하거나, 넉넉한 학비로 여가를 즐기며 공부한 것이 아니라는 건 남들과 다르다. 자동차에 취사도구를 싣고 저렴한 야영지를 찾아다닌 곤한 유랑이었고, 밤잠 안자고 꿈속에서도 공부해 고되게 마친 학교였지만 괜찮다.
돈의 여유를 구하지 않고 내 가진 것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내가 기특하다.

지금도 그렇다. 돈의 자비를 구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허락을 구한다.
채우지 못하는 물질을 마음으로 채우며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다 보니, 넘치게 가졌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이 동네의 삶에서 그런 눈을 얻었다.

어릴 때의 가게집 아이는 ‘돈 없으면 가난한 것이고, 가난하면 거지’ 라고 했다.
미국에서 만난 어떤 지인은 내 자동차 여행을 두고 “그건 여행이 아니라 홈리스 체험이지.” 라며 웃었다.
‘거지’나 ‘홈리스’나 같은 뜻의 단어지만 내 느낌은 전혀 달랐다.
아이가 말한 거지는 나를 무지 아프고 슬프게 했지만, 지인이 말한 홈리스는 왠지 낭만이 깃들고 부자보다 여유로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나는 모아둔 돈은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자유롭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부자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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