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따라가는 것도 칭찬 받을 짓

올가미와 울타리

나는 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바빠도 과속 운전을 하지 않으며, 공공장소의 경고문이나 안내문의 수칙을 잘 살피고 따른다.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금지된 구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신기한 돌멩이나 열매 같은 것조차 함부로 주워 오지 않는다.
그 무게가 가볍든지 무겁든지 법으로 정해진 것은 지키자는 게 내 신조다.
그것은 국법이기 전에 내 엄마의 법이었고, 신앙의 질서였다.
“법이 가지 말라는 데는 가지 말고, 법이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마라.”
아픈 사춘기의 반항아 딸에게 엄마가 지시한 첫 계명이었다.

“역마살 낀 너를 무슨 수로 막겠나.”
엄마의 그 말을 나는 딸에 대한 포기 선언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회초리보다 효과적인, 교묘한 올가미를 위한 전주곡이었다.
“오냐, 정 그렇게 나돌아다니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믿을 수 없는 얘기에 어리둥절해 있는데 엄마가 말을 이었다.
“대신에, 딱 두 가지만 약속해라.”
“무슨 약속?”
엄마는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죄짓고 순경한테 잽히지 말고,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 가지 마라.”
엄마는 ‘절대로’를 강조했다.
순간, 피식 터지려는 웃음을 꿀꺽 삼켰다. 그딴 걸 가지고 뭘 그리 비장하고 엄숙하게 구시나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순경한테 잡혀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병원 구경도 못 한 내게 응급실이란 당치도 않았다.
내 그런 속내를 엄마는 단번에 꿰뚫었다.
“그래, 하나도 어렵지 않다. 법만 잘 지키면 아무것도 아니다.”
엄마의 법과 나의 약속은 그렇게 세워졌다.

내 생각과 엄마의 말처럼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궁핍한 시골에는 범할 만한 법도 위험한 장소도 거의 없었다. 어지간하면 넘어갈 수 있는 유연한 울타리 법이었고, 안전장치가 필요 없는 순한 자연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은 곳일수록 법망은 높아지고 안전도는 낮아졌다. 자연의 그것처럼 유연하거나 대체제가 없는 인간 사회의 법은 건드리면 감전되는 전깃줄 울타리 같았다.
도시에는 전깃줄을 타는 곡예사들도 많았고, 선한 양을 연기하는 야수들도 많은 낯선 세상이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엄마의 법에 얽혀 있으며, 내가 엄마의 덫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엄마,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어떡해? 내가 암만 조심해도 사고는 날 수 있잖아?”
나는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만들까 하고 얕은 수를 써 보았다.
“인력으로 안 되는 거야 하늘에 맡겨야지.”
교회에 못 가게 하려고 내 머리카락을 숭덩숭덩 잘라 냈던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절에서 불공 들여 낳은 자식들이니 예배당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던 완강한 엄마였다. 사랑하는 첫딸이 서른세 살에 요절한 것은 그 원수 같은 예수 때문이라고 분노했었다. 그런 엄마가 느닷없이 예수님께 나를 양보한 건 엄마의 법이 세워지기 며칠 전 일이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옳게 살라고 가르치는 건 한 가지 아니냐. 어느 쪽을 믿든지 제대로만 믿어라.”
그 또한 엄마의 올가미였다. 망아지 같은 나를 세상에 풀어놓으면서 인간 영역 너머의 책임은 예수님께 전가하려는 고단수의 계산이었다. 가장 현명한 해답이기도 했다.

2백여 일의 미국 여행과 두어 달의 해외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나는 엄마의 법과 예수님께 전가된 책임을 잊지 않았다. 내게 생기는 모든 불상사는 그분의 탓이 될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었다.
엄마의 법과 하나님의 질서에, 나는 내 나름의 규칙도 만들어 붙였다.
규칙 하나, 해 지기 전에 잠 자리 마련할 것.
규칙 둘, 어두워진 후에는 이동하지 말 것.
규칙 셋, 피곤할 때는 무리하게 운전하지 말 것.
규칙 넷, 수상한 곳은 가지 말 것. (나쁜 예감은 무시하지 말 것.)
그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것을 규칙 제로와 규칙 다섯 번째로 동시에 우겨 넣었다.
순경에게 잡혀 가지 말고, 응급실에 실려 가지 말라는 엄마의 법은 헌법이었고, 신께 맡기는 나의 규칙은 시행령 같은 것이었다.

위법자의 눈물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은 어긴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법과 하나님의 질서를 여러 번 어겼다. 다만 잡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부분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위법하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다.
몬태나에서 조지아로 가는 길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업무적 출장 같은 것이었는데, 30시간 운전의 먼 거리였다. 이틀 밤은 숙박을 해야 했지만 하룻밤으로 줄이려고 했다. 일의 결과가 절망스러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초행이 아닌 90번 고속도로를 탔다.
사우스다코타를 지나 아이오와로 들어섰을 때는 캄캄한 어둠이 묵직하게 쌓인 늦은 밤이었다.
어둡고 한적한 길이 계속되면서 극도의 피로가 몰려와 걷잡을 수 없는 졸음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캄캄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싶지는 않아 휴게소가 나올 때까지 계속 가기로 하고 속도를 냈다.
제한 속도를 진작에 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발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법 지켜라.”
엄마의 음성이 나를 흔들었다.
“미안해, 엄마.”
약속을 안 지킬 때면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었다.
마음은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발은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누르고 있었다.
“주님, 운전대 잡으세요.”
불안할 때면 자동으로 생성되는 기도 같은 말이었다.
엄마의 음성이 또 들렸지만 못 들은 체했다.
암흑 같은 시골 도로,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오밤중에 경찰이 뭐 하러 나와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애앵~~! 느닷없는 사이렌 소리가 고요를 조각냈다.
졸음이 확 달아났다.
번쩍거리는 푸른 불빛이 어둠을 휘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삐뽀, 삐뽀… 애에엥!”
“아이고, 주여!”
갓길에 차를 붙이며 절망스러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러면서 또다시 하나님을 불렀다.
유리를 내린 차창 밖에 하나님 아닌 순경이 다가왔다.
“운전면허증하고 보험 카드 좀 봅시다.”
지갑에서 그것들을 꺼내 주며 내가 말했다.
“I’m so sorry, sir.”
“Don’t say sorry!”
순경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높고 단호한 소리에 기가 팍 꺾인 나는 기어드는 소리로 “오케이.”라고 대답하며 얼굴을 떨구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또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미안해요.”
“아, 조용하라니까요!”
순경은 벌컥 화를 내며 내 면허증과 카드를 가지고 경찰차로 갔다.
컴퓨터로 내 신원을 조회할 모양이었다.
“어떡해…”
세 가지 법을 모두 어긴 낭패감이 밀려왔다. 국가의 법, 엄마의 법, 그리고 나의 법까지 전부를 어긴 셈이었다.
국가에는 벌금을 물면 되고 나의 법은 자책하면 될 일이지만, 엄마의 법을 어긴 값은 어떻게 치르나 싶었다.
“엄마, 미안해.”
핑 눈물이 고였다.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자책과 후회가 왈칵 치밀어 올랐다.
아니다, 그보다는 뭐 하나 되는 일 없던 그날의 불운이 가장 큰 서러움으로 용솟음친 것 같았다.
자동차 불빛이 뿌옇게 번졌다.
불빛이 끝나는 곳은 캄캄한 어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뚫고 나가야 할, 동굴처럼 깊은 어둠의 입자들이 서글프게 부유하고 있었다. 마음이 동굴 속에 빠진 듯 암담해지며 흐느낌이 새 나왔다.

“아니, 내가 소리 질렀다고 울어요?”
서류를 들고 온 순경이 나를 보며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럼, 왜 울어요?”
순경이 다그쳤다.
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날의 불운에 대해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 때문에요. 제 엄마 때문에 울어요.”
“엄마요?” 순경이 뒷좌석을 삐끔 들여다보았다.
“어머님이 어디 계시는데요?”
나는 몇 번 더 코를 훌쩍거리다가 손바닥을 가슴에 대며 말했다.
“여기, 제 안에요.”
티슈를 뽑아 콧물을 닦으며 말을 계속했다.
“절대로 법을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절대로 순경한테 잡히지 않겠다고 돌아가신 엄마랑 약속…”
순경이 와락 성질을 부리며 내 얘기를 막았다.
“도대체 그딴 얘기를 왜 해요?”
순경의 고함에 놀란 내가 울음을 뚝 그치고 멀뚱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 했잖아요!”
나는 지나치게 화를 내는 그가 의아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으허엉! 큰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순경이 놀란 모양이었다.
“아, 울지 말아요!”
소리는 높아도 누그러진 말투였다.

순경은 컴퓨터에서 뽑아 온 진분홍색 서류를 보며 “에이!”, “쯧!” 혀를 차다가 와락 구겨 쥐며 말했다.
“범죄 기록이 하나도 없군요.”
그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 이번에는 노란색 서류를 들고 왔다.
“과태료 대신 경고장으로 줄 테니까, 다시는 과속하지 말아요. 알겠어요?”
나는 무슨 말인지 선뜻 알아듣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순경이 경고장을 주며 말했다.
“소리 지르고 화낸 건 미안합니다. 숙녀분을 위해서 그런 겁니다. 알지요?”
나는 말없이 서류를 받았다.
“그렇게 과속하다가 사고라도 났으면 어쩔 뻔했어요? 어머님께 더 혼날 거잖아요.”
“…”
아주 불운의 날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나는 경찰차만 보면 그 순경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때는 무섭기도 했는데,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
그 과장되게 왁왁거리던 성질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사과나 하소연에 쉽게 약해지는 자신을 알기에 지레 과장된 고함으로 쳤던 방어막이었고, 결국 또다시 마음이 약해져 버린 자기 자신을 향한 힐난이었음을!
그날 이후 다시는 순경에게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과속을 할라치면 엄마의 말과 순경의 말이 같이 들린다.
“법 지켜라.”
“어머님께 더 혼날 거잖아요.”

법은 어떤 이에겐 구속이고 또 어떤 이에겐 자유다.

덫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법과 구속이던 예수님의 사랑은 진정한 자유를 위한 방주였다.
지금껏 내가 아주 작은 사고도 없이 살아오게 해 준 구명 장치였다.

법과 질서가 지켜지는 곳에 진정한 자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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