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통 자국을 가진 천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사랑, 엄마, 꽃, 향기, 별, 무지개, 첫사랑, 아침이슬… 아름다운 것들은 무수히 많았고,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완전한 우연에서 얻은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다.

결국 내가 생각해 낸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천사’였다.
모든 아름다운 것에는 저마다의 그늘과 부정적인 요소가 숨어있지만, 천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나쁜 향기’나 ‘아름답지 못한 사랑’ 이란 말은 성립해도, ‘나쁜 천사’나 ‘아름답지 못한 천사’라는 말은 없었다. 성경이 말하는 타락한 천사조차도 악이 스며든 순간 사탄이 되어버려 더 이상 천사라 불리지 못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천사는 무지개나 아침이슬처럼 금세 사라지지도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이었다.

천사라고 하면 대부분 날개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곱슬머리 금발을 늘어뜨린 하얀 피부에 하늘거리는 옷자락, 그리고 찬란하고 신비로운 후광을 받는 그 커다란 날개… 우리가 흔히 아는 천사의 모습은 대개 그러할 것이었다.
그러나 내 생애 가장 먼저 만난 천사는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날아온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삼등열차에 무기력하게 흔들리던, 날개 없는 아저씨였다. 짧게 깎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는 땜통 자국이 선명하고, 세모난 열차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손등과 옷소매에는 묵은 때가 끼고 주름이 접혀 있던 빈곤한 모습의 천사였다

1967년, 만 13세의 내가 읍내의 재건학교인 상록중학교에 다니던 때의 일이었다.
대여섯의 젊은 선생님들이 뜻을 모아 상가에 교실 한 칸을 빌려 ‘상록중학교’라는 조그만 명패를 붙인 단칸 학교였다. 그러나 의욕과 열의만 넘쳤을 뿐, 허가도 인가도 없고 후원도 관심도 받지 못했던 작은 단체는 얼마 되지 않아 책상들이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문에 자물쇠가 잠겨버렸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였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데리고 산 위의 공터로 올라가 나무 그늘에서 수업을 계속했다. 그 광경을 본 산의 주인이 땅을 줄 테니 건물을 지으라고 허락을 했다.
선생님과 학생들은 쏟아지는 뙤약볕에 흠뻑 젖으며 터를 고르고, 어찌어찌 구한 목재들을 맨손과 맨 어깨로 실어 올렸다. 우리들의 건물, 우리들의 교실을 갖게 된다는 희망이 하도 커서 벗겨진 어깨의 아픔도 못느꼈다.

그러나 땅주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를 제재할 힘도 법적 근거도 없었다. 고르고 다져놓은 터를 파헤치거나 올려다 놓은 목재들을 도로 가지고 내려오는 어처구니없는 방법뿐이었지만, 그걸 갖다 놓을 공간조차 없었다.
상공회의소로 몰려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시위도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재건도 되지 못한 학교는 그렇게 영영 폐쇄되었다.

그러나 그 학교는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곳이었다. 쫓겨나고, 개척하고, 사기 당하느라 공부는 배울 틈이 없었지만 세상은 많이 배웠다. 나의 천사들도 그때 만났다.

삼등열차를 타는 천사

학생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학교를 찾아온 아이들의 형편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내가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집이 먼 시골에 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15분가량을 걸어가 기차를 타야 했는데, 내게는 기차표를 살 돈이 없었다.
인가받은 학교의 학생들은 소액으로 통학권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게 불가능했던 나는 몰래 도둑기차를 탔다. 역무원에게 잡혀 혼이 나기도 하고 위험을 감수한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역에서 껌을 파는 소년을 보고 나도 껌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차표를 사서 떳떳하게 승차하는 통학생이 되고 싶었다.

도매상의 위치와 가격, 마진 등에 관한 정보를 얻어 어렵게 껌 한 박스를 구입했다.
그러나 껌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장사를 시작하는 용기였다.
기차역 대합실이나 기찻간 안이나 교복을 차려입은 또래의 학생들로 붐비는데, 껌통을 들고 ‘껌 사세요’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구걸보다 더 초라하고 비참한 짓으로 생각되었다.
상록이라는 이름에 맞추려고 학교에서는 교복을 녹색 치마로 입게 했는데, 다른 학교의 까만 교복치마와 눈에 띄게 구분되었다. 남학교의 짓궂은 녀석들은 그 치마를 입은 나를 발견하면, “재건!” 소리치며 이마에 손을 올리거나 허접스러운 소리로 낄낄거렸다. 그런 것 만으로도 잔뜩 주눅이 들었는데, 그걸 입고 껌팔이를 한다는 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보다 아득한 느낌이었다.

기차역에서의 장사를 포기하고 기차에 올랐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기차 안은 몹시 붐볐다.
학생들이 몰려 있지 않은 칸을 찾아가 승객들을 살폈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가방 속의 껌 한 통을 꺼내 들었다.
“껌 한 통만… 사세요.”
몇 번을 속으로만 반복하다가, 가까스로 아주머니가 들을 만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껌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하필이면 내려야 할 손님을 골랐던 모양이었다. 아뜩해지는 낭패감으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손에 든 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연히 보고만 있는데, 누군가의 손이 내 시선 안으로 가만히 들어왔다. 내가 들고 있는 껌을 빼낸 그 손은 반으로 접은 지폐 두 장을 대신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고개를 들어 그 손의 임자를 쳐다보았다. 출근길의 직장인이 분명해 보이는 중년남성의 친근한 표정이 보였다. 내 시선을 받은 아저씨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살짝 흘리며 얼른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는 척했다. 쑥스러운 듯 수줍은 듯한 표정이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고개를 돌린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민망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꾹 눌려 있던 감사한 마음이 일어서며 나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정면으로 그분을 볼 수가 없었다. 가만히 곁눈질로, 그러나 세심하게 그분의 모습을 내 가슴속에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새의 그런 아저씨들은 너무 많아 특별한 기억으로 남길만한 뭔가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문득, 정수리 아래 옆머리에 ‘땜통 자국’이라고 불리던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하얗게 두드러져 보이는 동그란 흉터, 나는 곁눈질로 그것을 보고 또 보며 마음에 새겼다.
“잊지 않을게요, 아저씨.” 속으로 말했다.

그것은 내 가장 큰 위로가 된 조용한 배려였다.
따뜻한 마음이 곱게 접혀 있던, 세상에 유일한 진짜 돈이었다.
나는 그 돈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은빛 동전 두 개로 자꾸 기억되어 몹시 당혹스러웠는데, 어느 날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동전이 아니라 반으로 접은 지폐의 동그라미와 아저씨 머리의 동그란 흉터가 겹쳐져 만들어 낸 이미지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천사의 동그란 사랑의 표식이었던 것이다.

누가 나 더러 천사를 한 마디로 정의해 보라고 했다.
“볕.”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눈 부시게 반짝이는 빛 말고, 가만히 스며드는 따사로운 볕.”

그랬다. 내가 만난 천사는 그렇게 광채 없이 은은하고 소박한 볕이었다.
머리에는 후광이 아닌 동전 크기의 땜통자국이 있는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성.
날개 대신 삼등열차를 타던 수줍음 많은 그 아저씨를 나는 천사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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