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낙원의 완벽한 평화
우리는 낙원을 꿈꾼다.
보편적으로 죽어야 가는 곳이라지만, 소설이나 구전(口傳) 속에 등장하는 지상의 것들도 많다. 무릉도원이니 이어도니 하는 동양의 낙원들이 있고, 샹그릴라니 아발론이니 하는 서양의 파라다이스들이 있다. 이름은 달라도 완벽하게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제도와 이성으로 세운 온전한 이상향 유토피아와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울타리 안의 정원 파라다이스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간들의 낙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들은 모두 가상의 세계이며, 존재한다고 해도 신들이나 인간들을 중심으로 하는, 소유와 경계가 있는 통제의 세상이다. 다시 말해 경쟁과 다툼이 있는 세상이란 얘기다.
나도 아주 어릴 적부터 낙원을 꿈꾸어 왔지만, 나의 낙원은 존재가 없는 곳이었다. 인간이든 신이든 소유할 자아나 지켜야 할 육신이 없어 시기와 다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울타리나 경계도 없는, 온전히 개방된 대자연의 청정구역이었다. 그리고 나는 2002년 가을, 9월의 끝 무렵에 실재하는 그 낙원을 보았다. 애당초 목적지도 일정도 없었던 방랑여행인지라 콜로라도 주 경계를 넘었다는 어렴풋한 기억 말고는 지역이나 길 이름 따위는 전혀 생각나는 게 없는 곳이었다.
그날도 나는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길이면 무작정 아무 데로나 따라 들어갔다. 가다가 막히면 되돌아 나오면 될 일이었다. 행선지가 없는 길은 돌아서 가든 건너뛰어 가든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흘러가던 길이 어느 순간 인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공간 속으로 이어졌다. 집이나 건물은 물론 없었고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계도 표식도 없이 열려 있는 대지의 호흡만 고요로웠다. 평야인 듯했지만 평야도 아니어서 밋밋하거나 아득하지 않았고, 맨살의 좁은 흙길도 부드럽게 휘어지며 가파르지 않은 높낮이를 만들고 있었다. 길섶의 비스듬한 둔덕에는 나무나 바위처럼 돌출된 그 무엇은 하나도 없이, 자지러질 듯한 야생화들의 미소가 망망한 바다로 부드럽게 출렁이고 있었다.
선량한 바람결에 조심스레 흔들리는 색색의 꽃물결이 눈부셔 빛살을 피해 눈을 들었다.
그때까지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던 수평선이 아스라히 뒷걸음질로 멀어지며, 호위하듯 둘러선 설산의 하얀 봉우리들이 앞으로 조금씩 끌려 나왔다. 그들로부터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맑디맑은 시린 호수가 시작되며, 거꾸로 잠긴 웅장한 봉우리들을 가만히 껴안고 있는 수정의 장관이 펼쳐졌다. 나 자신도 이제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들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형체를 잃어갔다.
그곳은 내가 오매불망 그려왔던 그 낙원이었다. 오직 자연으로만 가득했지만, 열매의 무게에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라든가 뿌리를 내리려는 어린 나무를 위해 제 몸을 쪼개는 바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낙원이었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가도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가 바닥에 닿을 듯 휘어진 과일나무를 보면 마음을 에이곤 했었다. 저 결실을 맺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했으며, 저 많은 것들이 매달린 가지들은 또 얼마나 무거울까 애처로웠다. 나 홀로 겪어내야 했던 삶의 무게처럼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그 활짝 열린 대자연 속의 생명들은 결실에 대한 강박이 없어 수고로움의 무게 따위는 없어 보였다. 하늘색과 햇살과 얌전한 바람들 모두가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공평한 어루만짐으로 대지를 감싸고, 그 다정한 손길 아래 꽃과 풀과 맑은 물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경이로운 숨결을 어우르며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내 존재는 이제 완전히 소멸되어, 풍경을 바라보는 여행자에서 그 조화 속에 녹아든 하나의 가벼운 정령이 되었다. 신들의 조용한 힘겨루기조차 없는 온전한 평화와 조화의 세상, 가장 신령한 생기로만 가득한 정령들의 세상에 내가 있었다.
세워놓은 자동차 옆 길섶에 가만히 주저앉았다. 행여 풀꽃의 머리카락이라도 헝클까 싶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쪼그려 앉아 꺾은 무릎으로 몸을 지탱했다. 절반으로 낮아진 내 몸속에서 후욱! 바람이 터져 나왔다. 상체가 흔들리며 꺼이꺼이 울음이 솟구쳤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찾을 수 없었던 정령의 언어, 그것이 눈물과 흐느낌으로 터져 나왔다. 내가 표현할 수 있었던 최상의 언어들이었다.
놀란 내삐가 내 뺨에 흐르는 정령의 언어들을 핥으며 나를 깨웠다. 녀석에겐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낙원의 신비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다만 내 눈물과 웃음이 녀석의 천상과 지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런 내삐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내 눈물이 슬픔이나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털북숭이 속의 눈동자에 근심이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웃음을 머금었다. 비로소 근심이 지워진 눈동자가 반짝였다.
다시 자동차를 움직였다. 길이라고 해야 할지 열린 공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곳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사방에 깃든 정령들의 평화에 방해가 될까 봐 자동차와 내 숨소리까지 최대한으로 낮춘 채였다. 그러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둥글둥글 나지막한 사막풀들의 평원이었다. 마냥 푸르지도 알록달록하지도 않았고, 오밀조밀 예쁘거나 사랑스럽지도 않은 식물들의 바다였다. 메마른 듯 촉촉하여 쓸쓸하거나 삭막해 보이지도 않는 그것들은 한껏 키를 낮추고 바람의 간지럽힘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조금 전 지나온 야생화 바다와는 전혀 다른 식물의 바다, 색깔과 장식을 걷어낸 정직한 자연의 민낯이었다.
낙원의 담장 밖
얼마를 그렇게 흘렀을까, 사막식물들은 점점 촉촉함을 잃어가다가 앙상한 건조함으로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 계속 떠밀려 올라간 언덕에 희끗희끗한 얼룩들이 늘어나고, 눈발들이 쌓여 형성된 그 하얀 얼룩들 끝에 야영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이 모두 열려 있는 야영장은 비어 있었다. 먼발치로 하얗게 눈을 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지만, 야영장은 봉우리가 아닌 나무도 풀도 없는 평평한 둔덕이었다. 계절의 빗장이 걸린 오피스 벽에는 알아서 사용료를 넣으라는 철제 박스가 붙어있었다.
먼저 와서 텐트를 치는 한 가족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그들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초등학생쯤으로 짐작되는 남매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였다. 아이들은 내삐와 금세 친구가 되어 고함치고 깔깔거리며 어울려 놀았다. 내삐가 그렇게 신바람을 내며 뛰노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녀석을 보는 내 마음이 못내 안쓰러웠다. 나는 부부에게 정령들의 세상을 지나왔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얼른 누르며 반갑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인적 없는 야영장의 밤을 이웃하여 지새울 사람들이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인 것 같았다.
새벽의 고요를 깨뜨린 건 코요테들이 흩어내는 메아리 소리였다. 사방의 봉우리들 여기저기에서 하우우~~!!! 목청을 돋우는 코요테들의 주고받는 하울링이 너무 신기해 몸을 떨었다. 야생꽃바다도 사막식물들의 평원도 모두가 난생처음 만나는 세상이었듯이 코요테들의 합창도 그랬다. 그것은 야생동물의 공포스러운 포효가 아니라 낙원의 미명이 터뜨려지는 태고의 신비 같은 소리였다. 익숙한 것들은 정겨운 편안함을 느끼게 하지만 처음 보는 것들은 경탄과 신비로움으로 출렁이게 했다. 그날의 모든 새로운 것들에 나는 신비의 파도를 타고 멀미가 나도록 출렁이며 떠다녔다.
코요테들의 함성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내삐는, 밖으로 나가겠다며 나를 졸랐다.
“안돼, 이따 날 밝으면 나가서 옆 텐트의 아이들이랑 뛰고 놀자.”
나는 야생의 본능이 조용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듯한 내삐를 달래며, 녀석은 이제 인간인 내게 속한 내 종족임을 조곤조곤 얘기했다.
그러나 훗날 어떤 이가 그랬다. 그 새벽에 내삐가 보인 행동은 정체불명의 아우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겠다는 녀석의 무모한 충정이었다고. 그날 나는 다시 한번 내삐를 꼬옥 안아주었다.
나는 그 길을 다시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나도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에 숨겨진 샹그릴라처럼, 록키산맥 어딘가에 숨겨진 비밀의 낙원에 잠시 초대받아 다녀온 행운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내 유랑여행에서 얻은 최고의 행운이요 신의 선물이라고도 하겠다.
그 일 이후로 천국에 대한 내 믿음은 요지부동의 확신이 되었다.
이미 한번 가 보았던 그곳이 이제는 죽어야만 다시 갈 수 있는 그 천국이라는 생각이다.
죽음은 삶의 끝에 놓인 출구가 아니라, 이 땅의 그림자를 벗어내고 들어갈 수 있는 진짜 삶의 입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면 말끔히 잊어버린다. 그러나 꿈속의 그 행복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어쩌다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본다든가 하는 예시 같은 꿈을 꿀 때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생생하게 잊히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어쩌다 꾸는 꿈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밤마다 천국을 다녀오는 게 분명하다. 잠에서 깨면 기억나지 않는 꿈속의 일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밤이 오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마냥 설렌다. 그러니 나는 천국에 가기 전에 이미 밤마다 천국을 여행하며 사는 셈이다.
믿기지 않는 엉뚱한 소리라며 웃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보다 더 확실한 진실이 없다.
이 모든 평화는 아마도 하나님이 나와 늘 함께하시는 덕분일 게다. 보이지 않는 대자연의 정령들이 그러했듯, 그 다정한 손길이 매일 밤 나를 그곳으로 이끌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