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지애나 주에서 겪은 일들 가운데는 잊지 못할 두 가지의 추억이 있다.
숲 속 야영장의 밤 손님과, 주유소 주인의 황당한 선의다.
나폴레온과 물리친 곰
우선 야영장 얘기부터 해야겠다.
그곳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맑은 물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야영장이었다. 식수와 화장실도 있고, 바로 옆에는 노부부의 RV가 이웃 하고 있어서 마음 든든하기도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소리 지르라구. (Give me a holler if you need any…)”
밤에 잠자리로 들어가면서 영감님은 친절하게도 그런 말까지 했다.
우리는 안심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저벅, 저벅…”
자갈모래 바닥을 밟는 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텐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강아지 나폴레온이 발딱 머리를 쳐들었다. 나도 슬리핑 백을 걷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캉! 캉!”
나폴레옹이 날카롭게 짖었다.
나는 머리맡의 대형 손전등을 집어 발소리 나는 쪽에 대고 불빛을 쏘았다.
잠시 주춤하던 소리가 옆으로 방향을 트는 것 같더니 빙글빙글 텐트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강아지도 빙글빙글 따라 움직이며 으르렁거렸다.
나도 소리를 따라 전등불을 움직였다.
그러나 소리는 물러나지 않고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꽤 덩치가 큰 짐승인 것 같았다.
“곰이다…!”
강아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겁먹으면 안 돼, 내삐. 알았지?”
나폴레옹은 걱정 말라는 듯 가볍게 내 뺨을 쓱 핥았다. 그리고 온몸을 흔들며 큰소리로 짖어 댔다.
바깥의 그것은 주춤하다가 곧 다시 움직였다.
쉬익! 무거운 숨소리와 푸르르 입술을 터는 것 같은 소리도 들렸다.
얇은 텐트자락이 떨릴 듯 가까이 온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강아지가 주춤했다.
“안돼, 내삐. 겁먹지 마.”
다급하게 말하는 나도 움츠려 들었다.
텐트 안에는 무기가 될만한 게 없었다.
찬바람 같은 공포가 텐트 안으로,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겁에 질리면 우리가 당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스미었다.
생존의 본능이 퍼뜩 정신을 차리게 했다.
“호랑이, 아니 곰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나는 내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가장 우렁찬 소리를 터트렸다.
“컹컹컹!!!”
느닷없는 파바로티의 우렁찬 포효에 나폴레옹이 펄펄 힘을 냈다.
“캉.캉.캉!!!”
우리 둘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목청을 돋우었다.
텐트에 바싹 붙인 손전등도 우리가 짖는 소리에 맞춰 힘차게 흔들었다.
“컹컹컹!!!”
“캉캉캉!!!”
장단이 아주 잘 맞았다.
두려움이 먼저 물러나는 것 같았다.
정체 모를 발소리도 물러서는 기미가 느껴졌다.
“캉캉캉캉…!”
기고만장해진 나폴레옹이 길길이 날뛰었다.
멀어지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녀석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따라가 끝장을 보겠다는 듯 텐트 문까지 긁어댔다.
나는 쿡! 웃음을 터트리며 강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됐어. 우리 내삐 아주 자알 했어! 최고야, 최고!”
녀석의 머리에 뽀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으쓱해진 나폴레옹이 혓바닥을 내밀고 ‘헤헤, 헤헤…’ 몸을 흔들었다.
녀석도 나처럼 웃고 있었다. 그래 보였다.
그러나 그 밤 내내 그 발소리의 여운에 눌려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스락 거리는 풀잎소리도 잔가지의 낮은 바람소리도, 모두가 저벅거리는 발소리로 일어나며 내 신경을 긁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지친 강아지는 잠 속에 빠져, 녀석 특유의 코골이를 했다.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녀석이 깊은 잠에 빠질수록 내 잠은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섭섭한 이웃
그렇게 맞이한 아침은 얄밉도록 능청스러웠다.
새들은 명랑하게 노래하고 햇살은 계집애처럼 까불거렸다.
지난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모두들 시치미를 떼며 놀리는 것 같았다.
모닝커피잔을 든 노부부도 그렇게 시치미를 뗐다.
그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곰이 왔었어요.”
담담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내가 지난밤의 전투얘기를 하려는데, 영감님이 침묵을 깼다.
“곰이 아니고, 오소리였을 거야.”
생각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으려 했다.
“아, 오소리요.”
잠자코 있던 노파가 무슨 눈치라도 보듯 슬그머니 RV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누라의 뒷모습을 좇던 영감님의 시선이 머쓱하게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미심쩍다는 듯한 소리로 영감님에게 말했다.
“근데, 오소리 발자국 소리가 너무 무거웠어요.”
영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 노부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괜히 서운한 생각이 들며 입꼬리가 처지는 때문이다.
‘아무리 노인네들이라고, 그 난리를 쳤는데 못 들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안 들리는 사람들이 ‘뭔 일 있으면 소리 지르라’는 말은 왜 했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노인네들이라 정말로 못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게를 실으려고 한다.
그게 무엇이든 노부부에겐 가볍지 않은 마음의 무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들 노부부 대신, 이쁜 강아지 나폴레온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생각한다.
녀석과의 그 일을 생각하면 나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간다.
녀석이 건너간 무지개 다리너머까지 올라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