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남자와 강아지는 왜 그랬을까?

야영장에서 생긴 일

앨라배마의 어느 야영지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입구의 조그만 오피스에는 유니폼을 입은 보안 관리인이 있었고, 통나무로 된 게이트도 설치돼 있었다.
6시가 되면 세워져 있던 통나무가 내려와 자동차 출입이 통제된다고 했다.
관리인은 그곳이 대단히 안전한 야영장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나와 강아지)가 들어갔을 때, 상당히 넓어 보이는 야영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도 관리인이 지정해 준 내 텐트 사이트는 가장 안쪽의 구석 자리였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 그늘이 두꺼웠고, 다른 자리들과 너무 떨어져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관리인에게 다른 자리를 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예약이 차서 다른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직은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몇 시간 후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고도 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는데, 주말이 시작되는 다음 날부터 야영장 가까운 경기장에서 프로 풋볼 경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 때문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텐트 칠 빈 자리가 없을거란 얘기였다.

그렇다면 나도 그 자리를 예약해놓고 밖에 나갔다가, 저녁 때 다른 사람들 몰려올 때 들어오겠다고 했더니 그건 안된단다.
시내의 모든 숙박업소들은 물론 주변의 야영장들과 공원, 공터까지 빈 자리가 없을 것인데, 만일 내가 자리를 비우고 없으면 먼저 온 다른 사람에게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는 ‘first come, first served’ (먼저 온 사람이 임자) 사이트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풋볼경기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마이애미 돌핀스의 열렬한 팬이었고, 코치인 단 슐라와 주장 댄 마리노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렇더라도 관리인의 얘기는 이해되지 않는 몇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냥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내가 미국의 야영장 경험이 없어서 규정이나 규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데다가 내 영어가 신통치 않아 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의심스러운 점을 따지며 이해를 구하는 것도 영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 서른살도 못돼 보이는 젊은 관리인은 상당히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연갈색 셔츠와 진갈색 바지의 유니폼이 신뢰감을 더 해 주었다.
그는, 조금만 더 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와 야영장을 꽉 메울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나폴레옹과, 남의 캠퍼앞에서

나는 그가 정해 준 구석 자리에 차를 세웠다.
강아지 나폴레온을 소나무에 느슨하게 묶어놓고 자동차에서 짐을 내려 야영준비를 했다.
방수포 위에 텐트를 펼치는데 갑자기 나폴레온이 앙칼지게 짖어댔다.
돌아보니 관리인이 다가오다가 우뚝 멈춰서 있었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어지간하면 경계하지 않는 녀석이 그렇게 날카롭게 짖어대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나는 나폴레온의 사람 보는 감각을 신뢰했다.
녀석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대하고 녀석이 경계하는사람은 조심스럽게 대했다.
나폴레온이 그토록 경계하는 사람이면 각별히 조심하자고 마음먹었다.

관리인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인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겁먹은 듯 물었다.
“그 개, 사람 물어요?”
그러자, 생각지 않았던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물어요. 누구든 내 가까이 오면 아주 사납게 물어요. 굉장히 위험하죠.”
위협적인 얘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남자는 뒤로 몇 발짝을 더 물러섰다.
내가 좀 과했나 싶어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나 한테 가까이 오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훈련이 잘 돼 있어서 안전거리 밖에만 있으면 공격하지 않아요.”
남자가 찬찬히 강아지를 살피며 서 있었다.
그 남자가 밍그적거린다는 생각이 들며 내 기분이 다시 나빠졌다.
“하지만, 나한테 가까이 오면 사정없이 물어요. 죽일 수도 있다구요.”

그랬지만 남자는 몇 번 더 주변을 얼쩡거렸고, 그 때마다 강아지는 길길이 날 뛰었다.
“더 크게 짖어 내삐야. 더 크게! …우리 내삐 잘 한다.”
나는 그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강아지 나폴레온을 응원했다.
녀석은 ‘작은 영웅’이라는 이름값을 단단히 했다.
나폴레온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작은 손전등이 든 등산조끼 주머니 위를 어루만졌다. 그게 마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관리와 보안을 겸한 업무적인 순찰일 뿐이라고 좋게 생각하면서도 조금도 방심하거나 곁을 내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저녁이 되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야영장은 절반도 채워지지 않았고, 컴컴한 내 텐트 주변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오피스로 갔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네 명의 대학생들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가 너무 외진데다 주변이 컴컴해서 무섭다고, 빈 자리가 있으면 바꾸고 싶은데 혹시 자리가 없느냐고 물었다.
“저기 빈 자리들 많잖아요. 아무데나 옮기면 돼요.”
여학생이 야영장을 내다보며 경쾌하게 말했다.
“낮에 관리인이, 다른 자리는 다 예약 돼 있고, 빈 자리는 거기밖에 없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다른 학생이 야영지 예약 현황인 듯한 서류를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빈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그랬지.”
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왜 그랬지?”를 주고받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서 말했다.
“왜 그랬지?”

자리를 옮겨 다시 텐트를 치며 나폴레온을 보았다.
“내삐야, 그 관리인은 왜 그랬을까?”
방수포위에 엎드린 녀석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낮의 그 일은 이미 까맣게 잊은 듯 평온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내가 또 말했다.
“그리고 내삐 너, 너는 왜 그랬는데?  그 남자한테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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