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카우보이 탈무드, It happens.

비행기가 뜨는 마을

마을은 낡았다.
늙은 집들은 기울고 퇴색했고, 지친 길들은 패이고 갈라졌다.
마을과 함께 심었을 뚱뚱한 가로수들도 온몸에 상처를 매달고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을은 몹시 곤궁해 보였다.

산뜻한 색깔과 반듯한 벽을 가진 젊은 집도 있기는 했다.
비스듬한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마을을 굽어보는 서너 채의 집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들 역시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넓은 것도 아니어서,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다소 교만해 보일 망정 이질감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 아침이면 나는 꼬리형제인 똘이와 콩이를 데리고 언덕에 오른다.
젊은 집들을 지나 비탈을 오르면 길은 이내 평지가 되고, 그 평평한 길 끝에 뜻밖의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자락동 비행장’이라는 표지판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길 이름인 줄 알았다.
이런 촌 동네에 비행장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창고처럼 생긴 격납고 하나가 달랑 서 있는 황량한 공터는, 무심히 보아서는 비행장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경비행기용 비행장을 못 보고 자란 내게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격납고 안에는 개인용 경비행기들이 있다고 했다. 루스의 남편이 소유한 비행기를 포함해 석 대의 비행기가 들어 있다고 했다.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월등하게 값이 나갈 것이고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것이라는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한번의 비행에 소모되는 기름 값이 최소 3백달러(45만원)가 된다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날아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루스를 만나기 위해, 속된 말로 꼬시기 위해, 날아다니다가 결혼에 골인한 후로는 한 번도 띄우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 되었다.
나를 위해 비행기를 띄우겠다고 그들이 말했을 때, 마음은 냉큼 비행기에 올라 앉았지만 입은 정중히 사양을 했다. 내게 기름값을 받든 안 받든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나도 비행기를 가진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 라는 싱거운 소리로 그들의 비행기 타는 것을 대신했다.

“이 동네, 가난한 줄 알았는데 숨은 부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나는 사촌 같은 이웃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웃사람은 실바람처럼 웃었다.
“부자가 어디 있어요?”
“몇 천, 몇 만 에이커가 되는 농장주들도 여럿 있고, 석유가 나오는 땅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잖아요. 그 뿐인가요, 개인용 비행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웃사람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소유한 게 많다고 다 부자는 아니지요.”

그들이 사는 법

외지에서 들어왔다는 사람들 중에는 자락동 토박이들 삶의 방식을 낮춰 보는 이들이 있었다.
오직 땅을 지키고 대물림하는 것밖에 모른다는 말로 가볍게 평가했다.
그들의 재산인 부동산은 글자 그대로 움직임 없는 소비불가消費不可의 재물이며, 소유주인 그들 역시 변화나 도약 따위는 시도할 줄 모르는, 고인 물 같은 부동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들 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연합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소유한 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을 지키는 것이며 대물림을 하는 것이 영속하는 길이었다.

그들은 천지의 영원함을 믿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It happens’로 표현되는 순리일 뿐이었다. 끝이 아니라 통로라고 믿어 울지도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종말의 의미가 담긴 dead나 decease 보다는, ‘시간이 지나가다’ ‘고통이 사라지다’ ‘바람이나 소리가 잦아들다’ 라는 뜻을 같이 담고 있는 pass away로 표현이 되었다.
해가 지고, 꽃이 지고, 잎이 지듯이 죽음도 다만 숨이 ‘지는’ 것이었다.
지는 해는 다시 뜨고, 지는 꽃은 열매를 맺고, 지는 잎은 새싹을 틔우듯, 지는 숨은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자락동에는 죽음이 없고, 죽음이 없는 삶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부富는 축적이 아니라 지속이고, 소유가 아니라 신탁이며, 삶은 소모가 아니라 순환이었다.

집이 낡고, 길이 패이고, 늙은 나무는 상처투성이지만 마을은 아파하지 않았다.
울거나 신음하지 않았다.
자락동의 지경은 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며,
대물림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영생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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