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원사막 언덕에서 멈춘 유랑

카우보이 마을에 입성하다

* 마을이름에 Mont 가 들어가서 ‘자락동’이라는 이름으로 칭한다

“왜 하필 이런 동네예요?”
처음 나를 방문한 사람들은 그렇게 묻는다.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도 속으로는 그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한국인은 물론 유색인 하나 없는 백인 카우보이들의 동네.
병원도, 약국도, 가게도 없는 이 허술한 곳을 참 용케도 찾았다고,
나 아니면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칭찬 아닌 핀잔을 준다.
나중에 병이라도 나면 어쩔테냐고 진심 어린 걱정도 잊지 않는다.

내 방문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이 동네 토박이들도 그랬다.
“있는 사람도 떠나겠다는 동네에 연고도 없는 외국인 여자가 혈혈단신으로 찾아 든 것은 수상한 일이다.
뭔가 심상찮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처음엔 그런 짐작으로 수군거렸다고 한다.

집을 중개해 준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내 신원조회까지 했다.
나는 그게 의당 지켜야 할 동네의 규정이라도 되는 줄 알고 오히려 기쁘게 허락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한테만 그랬었다.
내 담당 중개인 패티는 그 일에 대해 무척 민망해했고, 너그럽게 그녀를 용서(?)해 준 나와 친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걸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토박이들조차 떠나가는 쇠락한 동네에, 외모와 언행과 문화가 다른 이방인 여자가 불쑥 들어왔는데,
연고도 없고 가족도 없이 혼자 왔는데, 이상하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자란 고향마을을 떠올려보았다.
낯선 외국인 여자가 그곳에 들어온다면, 그들도 궁금해하고 의심의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이곳 카우보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자락동의 첫 인상

사실 나도, 하필이면 이런 곳에 정착할 계획은 아니었다.
저 유명한 러쉬모어 큰 바위 얼굴의 산동네나 그 주변마을 어디쯤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다. 원래는 록키산 국립공원 뒷길에서 보았던, 그림처럼 예쁜 그 집을 탐냈었다.
더 원래는, 테네시 주의 어느 계곡 냇물이 흐르던 숲속이었다.
자동차로 44개 주를 누비면서 점 찍고 눈독을 들였던 장소들은 수 없이 많았다.
야생화 융단이 깔려 있는 산비탈, 맑은 호수가 반짝이는 파란 계곡… 그런 곳에 지어진 집을 갖고 싶었다.
그랬지만 도시나 바닷가의 집은 염두에 없었다.
도시와 바다는 분주하면서도 고독했다.

자락동은 도시도 아니고 바닷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거진 숲이나 호수도 없었다.
아득한 풀의 바다 초원사막 가운데에 빈곤하게 엎드린 낮은 언덕,
나무도 바위도 없이 밋밋한 비탈은 바람의 놀이터였다.

내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들었던 첫소리는 개 짖는 소리였다.
다급함이나 적개심 없이 한가하게 짖는 게으른 소리였다.
한낮의 침묵을 깨는 그 소리는 평화롭던 내 고향의 소리를 닮아있었다.
첫번째 여행을 함께 했던 강아지 나폴레옹을 생각나게도 했다.
“저 소리를 들으면서 살자.”
마음이 먼저 그렇게 결정했다.   
울타리를 두른 넓은 뒷마당에 내삐 닮은 녀석들을 키우자는 마음이 씩씩하게 앞장섰다.

0.31 에이커는 4백평이 못되는 넓이라고 하지만 그만하면 충분해 보였다.
가파르지 않은 비탈까지 있어 강아지들이 뛰놀기엔 그만일 것 같았다.
사방을 두르고 있는 철사울타리는 엉성하기는 해도 야생동물을 막고 강아지들을 지켜주는 구실은 할 것 같았다.
그만하면 내가 바라던 집이다 하고 그 자리에서 계약금을 주고, 며칠 후에는 내가 집주인이 되었다.
나이가 60이 넘은 시골집이라 괜찮은 자동차 한 대 가격을 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지역의 은행을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편리하기도 하겠지만 주민으로 받아들여지는 데도 영향을 줄 것 같았다.
명색이 다운타운이라는 시내까지는 걸어서 10분이 못되는 거리였다.
도심의 넓이는 약 300 미터.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관공서들과 식당과 두어 개의 소소한 가게들이 양 편에 비치돼 있었다.
지붕이 높거나 출입문이 두 개 이상인 건물은 없었다. 전부 고만고만한 크기와 모양의 낮은 건물들이었다.    

박물관과 우체국을 지나 작은 공터가 있고 은행이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갔다.
두명의 여직원들이 하나는 드라이브 웨이 창구를, 하나는 로비 창구를 담당하고 있었다.
내가 새 계좌를 만들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몇 명의 고객들이 은행을 방문했다.
직원들은 가족처럼 친근하게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모두의 이름은 물론 키우는 개와 고양이들까지 기억했다.
“안녕하세요, 존스씨, 강아지 쌤이 아프다더니 괜찮아졌나요?”
또는
“주디 아줌마, 오늘은 고양이 몰리를 안 데리고 왔군요.”
그런 식이었다. 놀라운 정경이었다.
어찌나 정겹고 풋풋하던지, 서류를 채워 넣던 손을 멈추고 오랫동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고객들과 다 친한 사이군요?”
내가 신기해하자 은행 직원도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같이 자라고 같이 살아왔는데, 모두 가족이지요.”
타운은 하나의 가정인 셈이었다.
나는 그게 벅차도록 좋았다.     

나는 동네의 모든 것들이 좋아졌다.
걸어 다니며 볼 일을 볼 수 있고,
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비워도 괜찮았다.
풀벌레들이 자장가를 부르는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고,
살구나무에 앉은 새들의 상쾌한 아침노래에 잠이 깨고…
그런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러나 도시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그저 황당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락동의 바람과 풀과 새들의 양해를 구했다.
나도 그들의 가족이 되어
날갯짓하고, 노래부르고, 반짝이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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