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잃을 것 없는 초보운전자의 미국 유랑기

강아지와 출발한 첫 번째 여행

2002년 9월 5일에 떠난 첫 여행은, 대륙에 무지한 여편네의 무모한 모험이었다.
운전면허 취득한지 2년째, 동네의 한적한 길만 다녀보았던 탓에 고속도로 운전은 불안하고 긴장되던 초보였다.
게다가 미국은 내게 플로리다에 방금 도착한 탐험가의 신대륙 같은 곳이었다.
마흔 두 살의 한국인 여자는, 미국인의 서른 여덟 살 신부로 플로리다에 정착해 탐험의 첫발도 내딛어보지 않은 초보시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외국어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늘지 않았다. 학교에서 치른 시험점수는 잘 받았지만 의사소통의 수준은 대여섯살 아이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한국어 발음도 매끄럽지 못했는데, 그런 나의 영어발음은 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다르지 않은 외국어로 들리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자동차에 텐트를 싣고 야영지를 유랑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은 나를 미국의 하룻강아지로 취급했다.
“여기가 한국인 줄 알아?”
“아니.”
“미국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아?”
“안 겪어봐서 몰라.”
‘그거 알아? 저거 알아?’로 시작된 겁주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여자가 혼자 다니면서 당할 수 있는 불상사들을 얘기했고, 테드 번디 같은 연쇄살인마들 이름과 범행도 열거되었다.그러나 나는, 호기심 천국에 황소의 유령이었다. 여행이라면, 가다가 죽어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알고있었다. 여행지에서 연쇄살인마를 만날 확률은 벼락을 연달아 맞을 확률보다 적다는 것을.
내가 겁먹고 물러 설 확률은 로또 1등에 서너번을 연달아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는 것을.

대륙의 실선을 따라

결국 내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세 살배기 강아지 나폴레온을 동반하기로 했다.
몸집은 작았지만 재주 많고 영리하고, 라사 압소 특유의 충성심이 대단한 아이였다.
무엇보다도, 녀석은 내가 미국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내 편이었다.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
남편의 집은 플로리다와 조지아 접경에 있었으므로 북서부의 모든 곳이 앞으로 나아갈 내 목적지가 되었다.
대륙의 구석구석을 모조리 훑고 다닐 작정이었다.
남편은, 기름 떨어진 자동차가 멈춰 선 자리에서 강아지와 내가 굶어죽도록 방치해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마음이 돌아 선 남편이라서 더 더욱 그럴 수 없을 것이었다.
변해버린 남자의 마음이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건 확실히 서글픈 일이었지만, 동시에 다행스럽기도 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인간이 ‘잃을것 없는 인간’이라는데, 내가 그런 무서운 인간이 되었으니까.
타국에서 내 유일한 존재였던 사람이 더 이상 내 사람이기를 포기함으로써 나는 온전한 혼자가 되었다.
내 맘대로 떠돌아도 좋을 야생마가 되었다. 가장 홀가분하고도 무서운 자유인이 되었다.

북서부로 향하는 82번 국도를 탔다. 차들이 많은 고속도로는 아직 내게 불편했다.
완만한 언덕과 끝없는 평지가 이어지는 동남부의 도로 위에는 무한정 넓고 시원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늘 끝의 아스라한 지평선을 향해 거칠것없이 뻗어나간 도로는 춤추듯 경쾌하게, 그러면서도 다급하게 달려들어 더 재빠른 속도로 바퀴아래로 미끄러져 나갔다.
“아, 이게 대륙이구나!”
몇 시간을 달려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며 대륙의 품을 절감했다.

첫 날은 그렇게 무작정 달리며 난생 처음 경험하는 진짜 장거리 여행의 맛을 음미했다.
내삐를 위해 두어 시간마다 멈춰 바람을 쐬고,
야생화 무리들의 아름다움에 홀려 정차하고,
배고픈 자동차를 위해 주유소에 멈추고… 그렇게 여유롭게 북서쪽으로 전진했다.
남부의 가을은 단풍보다 화려한 야생화들로 계절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급적 느린 속도로 전진하며, 뜨거운 가을의 별다른 풍경냄새를 최대한 깊숙이 들이마셨다.

앨라배마 주 입구의 안내소에 들어갔다.
관광지와 길을 안내하는 다양한 지도들이 진열대에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앨라배마 주 지도와 미국 전역지도 하나씩을 집어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먼저 미국지도를 펼쳤다.

9월의 시작에도 플로리다와 앨라배마는 찌는 무더위였지만 북부로 가면 찬가을 기운이 묻어날 것이었다.
가을과 겨울에는 중남부만 돌다가 봄이 되면 중북부로, 여름에는 꼭대기로 올라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볼펜을 꺼내 중남부지역에 이리저리 얽혀 있는 크고 작은 선들 가운데 가장 가느다란 실선을 따라 그어나갔다.
고속도로나 도시에 막히면 되돌아 가 다시 실선을 찾아서 연결했다.
남들이 많이 찾지 않는 한적한 길을 따라 다니기로 했다.
다른 차량들에 밀리거나 쫒기지 않고 유유자적 흐를 수 있는 길, 그 길에는 나 만의 모험이 펼쳐질 것이었다.

작은 타운의 작은 문방구에서 형광펜을 샀다.
바깥의 녹슨 철제 테이블에 다시 지도를 펼쳐놓고 볼펜으로 그어 놓은 실선을 따라 노랗게 덧칠을 했다.
정맥처럼 굵은 푸른 선보다 노란 옷을 입힌 내 실선이 더 두꺼워졌다.

내 들끓는 기대와 흥분이 지도위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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