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정한 사람들
대륙을 자동차로 여행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기름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도중에 기름탱크에 노란색 불이 들어오면 창자와 간도 노랗게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국유림 산길에서 그런 일을 겪은 후 나는 2갤런짜리 비상용 기름통을 채워 차에 싣고 다닌다.
그러나, 기름보다 더 고통스러운 게 팽창된 방광의 절박함이다.
여성의 방광은 2갤런 기름통의 15분의 1 크기라는데, 하루 대여섯 번은 비워야 하는 그 작은 기관을 위해서는 난 왜 비상용 변기를 준비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시골길을 다니며 화장실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말이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볼 일을 본 적도 가끔 있었다. 물론 자동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외딴 시골길에서의 얘기다. 자동차 앞뒷문을 열어 가림막을 대신하고 강아지를 파수꾼으로 세워놓아 혹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어도 강아지 배변을 시키는 것으로 보이게 하자는 수작이었다. 남자와 달리 엉덩이까지 노출시켜야 되는 불편한 배설의 자세는 창조주의 가장 불공평한 성차별이었다.
그랬는데도 나는 변기를 준비하지 않았다. 기름은 채워야 하고 소변은 비워야 하는 것,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화장실 마음, 그런 것들이 이유가 되기나 할까?
그게 뭐든, 변기 없는 자동차 때문에 겪었던 배뇨 수난기는 한 두개가 아니다.
그리고 그날도 용량초과의 방광을 가까스로 달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루이지애나 주 시골의 우거진 나무와 웃자란 풀숲뿐이어서 차를 세우고 주저앉을 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았다.
길섶의 낮은 비탈에 우뚝 선 주유소 간판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차 안에 그대로 실수를 할 뻔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말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겉보기와는 달리 건물안은 제법 넓고 물건도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사람들도 꽤 여럿 있었는데, 모두가 흑인이었다. 중년의 남자가 구석의 칸막이안 창구에 서서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다급하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없어요.”
창구의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억양 없는 무정한 그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 이상 말은 나오지 않고 울음만 나올 것 같았다.
남자의 무정한 말이 이어졌다.
“화장실이 있긴 한데…거기 들어가 스모킹을 하고, 온통 난장판을 만들어서 잠궈 놨어요.”
나는 다급하게 등산조끼의 주머니 지퍼들을 열었다.
“난 담배 안 피워요.”
그에게 주머니 안이 보이도록 활짝 열어 보이며 말했다.
“그딴 거는 갖고 다니지도 않아요. 보세요”
그러나 남자는 내 주머니 따위는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잔돈을 내 주는데만 열심이었다.
“깨끗하게 사용할 게요. 정말로 깨끗하게 사용할테니 제발…”
나는 통사정을 했다.
그때 남자의 뒤에 앉아 있던 여자가 천천히 일어나 창구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한껏 애처롭게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담배를 피운다는 게 아니고, 그건…”
여자는 자신의 말 꼬리를 삼키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삼킨 뒷말에는 담배보다 독하고 은밀한 연기의 정체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여자는 벽에 걸린 나무 막대기를 벗겨 내게 주었다. 막대기 끝에 열쇠가 달랑거렸다.
여자가 턱짓으로 가리키는 구석을 향해 나는 용수철에 튕긴듯 후다닥 달려갔다. 그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다만 고마웠다. 그 때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자동차에 기름을 채웠지만, 조금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비프저키와 음료수와 간식거리들을 되는대로 봉지에 집어넣었다. 두 봉지를 채웠지만 40달러도 되지 않았다. 돈이 참 알차던 살기 좋은 때였다.
시골이라서 카드결제가 안된다고 했다. 조끼 안주머니에 비상금으로 넣어뒀던 백달러짜리를 꺼냈다.
20달러짜리 지폐 석 장과 동전 몇 개를 거슬러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떠나기 전, 강아지를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게 했다.
여기 저기 종종거리며 영역표시를 하고 다니는 녀석을 재촉해 곧장 다시 차에 태웠다. 어딘가 두꺼운 가난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칙칙한 분위기가 왠지 불편했다.
시동을 걸고 떠나려는 순간, 열쇠를 주었던 그 고마운 여자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화난 얼굴로 달려나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뭘 잘못했지? 여기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 안 되는 곳이었나? 강아지 소변을 보게 해서 저러나?”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하며 차문을 내렸다.
가까이 온 여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왜 거스름돈을 안 가져가요!”
열린 창문으로 20달러짜리 몇 장을 내 허벅지에 툭 던지며 여자는 또 소리쳤다.
“왜 돈을 안 가지고 가냐구요!”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괜스레 무섭기도 해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그녀가 더 큰소리로 야단을 쳤다.
“아, 왜 그러고 있어요, 이제 그만 가지?”
“죄, 죄송해요.”
나는 죄스러운 마음 하나 없이 사과를 하며 달아나듯 그곳을 떠났다.
다음 야영지에 들어가서야 거스름 돈을 받아 넣은 주머니를 확인했다.
분명 남자에게 받았던 거스름돈이 들어 있었다.
여자가 내 허벅지에 던져 놓은 돈도 있었다.
부부가 각자 내 거스름돈을 꺼내 놓았던 것일까? 지금도 영문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골 주유소에서 거스름돈 60달러를 두 번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돌아가 바로잡기엔 너무 멀었다. 목적지 없이 떠도는 유랑길이라 어느 길로 어떻게 왔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저녁때였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때의 그 시골 주유소에서, 60달러는 하루 벌이일 수도 있었다.
얼굴 색, 마음 색
나는 백인 남자와 결혼해 백인동네에서만 살았었다.
야영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전부가 백인이었다.
2000년대 초 야영장에는 정말로 믿기 어려울만치 유색인이 없었다. 때문에 대면할 기회가 없었던 흑인들은 조금 더 낯이 설고 무섭기도 했었다.
물론 백인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낯설고 불편했었다.
남편이 되기 전의 그와 만남을 가질 때는 꼭 중매쟁이 수한과 그의 여자친구를 대동하고 나갔다. 외국인 전용식당이나 카페에서 나의 외국인 남자를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와 결혼할 즈음 백인들 구분은 가능 해졌지만 흑인들 구분은 여전히 어려웠다. 같은 영어를 사용한다지만 그들의 발음은 많이 다르게 들려 대화도 더 어려웠다.
그 주유소도 내게는 낯설었다.
같은 기름을 파는 곳이었지만 어쩐지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자유분방함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냥 낯설음이었다.
냉장고나 커피머신은 얼룩이 졌고 비품들은 정돈돼 있지 않았다.
그랬지만 주인여자의 행동에는 가난 속에서도 기어이 지켜내려는 깨끗한 정직함이 배어 있었다.
소리치고, 겁주고, 돈을 던지는 방식이었지만 “내 것 아닌 돈은 거부한다”는 당당한 자존감이 스며 있었다.
그날 그곳에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성품을 보았다. 무정하게 다가와 보드라운 마음을 들킨 그녀의 수줍음 많은 정의를 보았다.
언제까지나 기억될 그들의 60달러는 23년동안 이자가 늘어나 6백만 달러의 정직함으로 내 안에 자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