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벌과 인격
10년 넘게 교제를 이어 온 지인과 결별했다.
워낙 입이 험한 데다 생각 없이 뱉아내는 그녀의 막말 때문에 몇 번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좁히곤 하던 사이였다.
그러다가, 그녀와 사이가 나빴던 한 사람이 죽으면서 그녀와의 거리는 아주 차단되었다.
“언니, 그년 뒈졌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굉장한 희소식이라도 전하는 듯 들떠 있었다. 나는 띵한 불쾌감을 느꼈다.
죽은 사람을 저주하는 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
돌과 나무와 저수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섬김의 대상이었던 내 고향에서는, 죽은자를 저주하는 건 두려운 짓이었다.
계속되는 망자의 저주를 들으며 내가 불투명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할무렵, 느닷없이 그녀가 물었다.
“나는 언니가 싫어하는 사람이면 그게 누구든 무조건 싫어할거야. 언니도 내가 누구하고 싸우든 무조건 내 편이지?”
내 입술은 마비된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자꾸 마른침만 넘어왔다.
내 침묵을 부정으로 여긴 듯한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서야, 그 현깃증같던 불쾌감이 노여움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라의 임금도 귀신한테는 빌고 달래고 그런다더라만, 별것도 아닌 너는 죽은 사람하고 싸우면서 편들어 달라고 하나. 내 살면서 그런 미친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솔직히 내 노여움은 정의나 도덕에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소리를 하나’ 싶은 모멸감에서 기인한 격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가 자신을 우습게 본다며 서운해 했다. 배운거 없다고 무시한다며 서러워 했다. 내 ‘의리없음’의 원인이 그녀의 낮은 학벌때문이라며, ‘배운 사람’의 오만과 차별을 비난했다.
의견충돌이, 서로 다름이 아니라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는 견고한 대립으로 치달으면 관계는 끝이다.
나는 그녀의 막말과 험담이 죽은자에게까지 이른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녀는 같잖은 지성으로 포장되는 내 의리없음을 역겨워했다.
나는 학벌에 상당한 무게를 두기는 하지만, 그녀 말처럼 인격의 잣대로 들이대지는 않는다.
학연, 지연, 혈연의 삼연三緣 가운데 단 한 줄도 없었던 내 인생 전반부는 오직 고해연苦海緣뿐이었다.
어느 대기업의 케이블 TV 제작부에 전속작가로 발탁 되었지만 학벌 때문에 스스로 그만둬야 했고, 가깝게 지내던 어느 감독님의 학벌에 대한 한 마디 때문에 연을 끊어버린 적도 있었다.
“작가선생님, 이력서 제출해 주세요.”
“작가가 글 잘 쓰면 되지, 이력서가 왜 필요해요?”
“행정 절차상 필요한 거니까 대충 써서 주세요.”
한국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유능한 인재들만의 회사였다.
대충이 아니라 한 줄밖에 써 넣을 게 없는 이력서를 들이밀 용기는 없었다. 차라리 포기하자는 용기밖에 없었다.
“… 그 친구가 글쎄, 그런 실수를 했더구만. 역시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은 안되더라고.”
어느 작가의 실수를 학벌 때문인 것처럼 얘기한 감독님의 연락처는 곧장 내 수첩에서 지워졌고, 다시는 그 분을 만나거나 연락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런 일은 일상이었다.
국민학교 입학조차 못한 원로 작가님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어느 방송국 PD의 얘기였다.
무학의 그 분은 가장 존경한 작가들 중 한 분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내 학력의 진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은 느낄지언정 사실을 밝힐 용기는 없었다. 학벌때문에 차별당하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괜한 남의 원과 한이 내 안에 쌓여갔다.
중년에 건너온 미국에서 기를 쓰고 학위를 취득한 이유는 그렇게 쌓인 원을 풀어내려는 순전한 화풀이였다고 해도 무방했다.
미국의 시작은 ESL이었다.
내 첫 번째 선생님이었던 재키 선생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었다.
영어가 안되는 탓에 잔뜩 주눅들고 긴장해 있던 나를, 선생님은 대번에 편안한 마음과 용기로 차오르게 했다.
내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어느 학급에 배치시킬 것인지를 알아보는 시험 (Placement Test)에서 나는 최저 점수를 받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순전히 나 하나를 위해 한영 그림사전을 특별히 주문해 주었다. 취학 전의 아이들이 보는 그런 그림책이었다.
집과 가족들, 학교와 선생님과 학생들, 관공서와 가게, 거기서 파는 물건들 따위의 그림에, “어머니(mother), 선생님(teacher), 과일(fruit) …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 그림 사전이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교과서들을 한 아름 챙겨 주셔서 나는 속으로 좀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알록달록 화려한 책들은 많이 비쌀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건 모두 공짜라고 했다.
수업료도 공짜고 학교에서 주는 학용품까지 다 공짜라고 했다.
내가 단번에 미국에 반해버린 순간이었다.
“하루에 3 마디씩 익히면 일년에 천 개, 5년이면 5천 개… 아니다. 하루에 다섯개씩으로 하자. 그러면 일년에 천 팔백, 5년이면 9천 개… 그 정도 단어면 필요한 대화는 가능하겠지.”
나는 그렇게 하루 다섯개의 단어를 목표로 세웠다.
집안에는 한영 사전들을 비치했다.
침실, 거실, 주방, 현관, 그리고 변기와 신발장 위에까지, 손만 뻗으면 바로 펼쳐 단어를 찾을 수 있도록 사방에 놓아 두었다.
갈피 사이가 벌어져 투명 테이프를 붙이게 되기까지 공부를 했다.
몇 달 후에 선생님은 단어 그림책 대신 GED를 공부하는, 진짜 책 같은 책을 내게 주셨다.
그림 대신 글씨만 가득한 책장을 넘기며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그러나 내가 그걸 읽을 수 있어서 원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그 책을 들여다보며 아는 단어들을 찾아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나갔다. 언젠가는 책장마다 동그라미가 가득 채워질 것을 꿈 꾸면서.
그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날 마다 늘어나는 동그라미가 문장을 만들고 문장들이 문단을 형성해 나갔다. 내 의욕도 나날이 넘쳐났다.
그렇게 몇 달을 더 공부하자 GED 공부반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GED 시험에 패스했다. 제로 그레이드에서 시작해 2년 만에 GED에 패스한 사람은 주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주지사 표창을 받고, 카운티의 관심도 받고, 신문에도 실렸다.
전문학교에서 보조약사 자격증을 따고, 주립대학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학위를 받은 것은 순전한 기적이었다.
물론 나는 죽어라 공부했다.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면서도, 공부를 했다. 정말이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현상이 있었다. 이런 내 얘기를 이해하는 사람도 딱 한 사람 만난 적이 있었다. 그도 내가 자기 말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죽어라 공부 해도 안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통계학이었다.
나는 통계학의 기초도 모르는 완전한 통계문맹이었다.
첫번째 시험에서 낙제점수를 받았다.
절망한 나는 수강취소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담당교수님이 말렸다. 아직 기한이 남았으니 그때까지 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수강취소를 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말을 따르면서도 나는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않았다. 한 과목을 낙제하면 장학생 자격이 박탈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예 대학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기적이 생겼다.
통계학 강의실 맞은편에 한국인 교수님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 문교수님이 통계학의 대가라는 얘기였다.
사무실로 찾아 간 내게 문교수님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한국어로 개인지도를 해 주셨다.
두어 시간씩 서너 번을 배우자 통계학이 산수처럼 쉬워졌다. 훌륭한 교수님 덕분이었다.
시험때마다 만점을 받았고, 보너스 퀴즈까지 모조리 획득해, 낙제가 있었음에도 A+로 마무리 했다.
나는 내 주립대학 졸업장을 기적의 증서라고 부른다.
국민학교 외의 정규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는 50대가 외국어로 외국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순전한 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학벌때문에 하도 한스러워 하니까, 가련하게 여긴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위로의 증서였다.
때문에 나는 내 졸업장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다만 감사할 따름이다.
그 졸업장이 내 인격을 높여 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학벌때문에 주눅들지 않을 자신감은 생겼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학력이 낮은 사람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다만 인품이 낮은 사람을 존중하지 못할 뿐이다.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했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인격체다. 예전보다 더 나은 인격의 소유자가 못된다.
내 인격은 학교보다 교회에서 더 많이 향상되고 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교과서보다는 성경이나 그 유사한 책들에서 지혜를 얻는 것 같았다.
때문에 나는 학벌 좋은 사람보다 믿음 좋은 사람을 존경한다.
반대로 학벌 좋은 사람의 개차반 행동은 코웃음으로 넘길 수 있지만, 믿음 좋다는 사람의 위선은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제일의 위선자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