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한 역사의 현장으로
에이브도 내 고집을 어쩌지못했다.
플로리다의 수많은 이들을 물리친 고집이었다. 에이브같은 순둥이 남자가 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나같은 동양여자가 KKK 모임을 직접 본다는것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닌가. 도무지 있을 것 같지않은 그런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오두막까지는 약 1,300 마일, 2천 km가 넘는 거리였다.
내 자동차로 가자고 했다. 남의 차 운전은 불안했다.
둘이 교대로 운전을 했다. 그러나 내가 우겨서 가는 길이니 운전도 내가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우겼다.
에이브는 “에이, 에이…” 하며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면서도, 내 고집을 기어이 꺾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가는 내내 KKK를 생각했다.
영화와 TV에서 보았던 장면들, 책에 실린 수많은 사진과 그림들, 역사시간에 들었던 끔찍한 그들의 만행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금지된 깃발들이 펄럭이는 오두막, 우르르 달려든 허연 망토의 눈만 빼꼼 내놓은 그들에게 결박을 당하고, 활활 치솟는 불길에 그림자를 일렁이는 기괴한 고목의 가지에 거꾸로 매달리는 모습도 상상해보았다.
동생의 연인에게 린치를 가해 쫓아버린 저들이었다. 며칠밖에 안 된 동양인 친구 따위는 처형이라도 할 사람들일 것 같았다.
언니가 늘 말했듯이 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보고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던 게 큰 탈이었다.
테네시가 가까워질수록 나의 상상은 점점 더 가관이 되었다.
“괘, 괜찮아?”
에이브가 내 상상을 헝클었다.
“무서워 보이는데… 그냥, 돌아가는 게 어때?”
“아냐, 무서운 게 아니라… 들떠 있는 거야.”
에이브가 쓸쓸히 웃었다.
“쌔미는, 우리 형을 몰라서 그래… 형이랑 그 친구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그의 옆모습이 슬퍼 보였다. 형들이 앗아간 사랑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에이브가… 무섭구나?”
나는 ‘슬프구나’ 대신, ‘무섭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재빨리 달려들었다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는 도로를 응시했다.
나는 정말로 무섭지 않았다.
이쯤에서 내 삶이 멈춘대도, 그들에게 처형을 당한대도 여한은 없었다. 오히려 그 비극적인 끝이 내 여행의 가장 화려한 마침표가 될 것 같아 전율마저 느꼈다.
“에이브, 우리 내삐 좋아하지?”
내 말에 에이브는 무슨 뚱딴지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준다면, 맡아서 키울거야?”
만일 내게 극단적인 일이라도 생기면, 가장 믿고 맡길 사람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이브는 피식 웃었다.
“쌔미가, 내삐와 떨어지는 건, 절대 불가능해.”
그는 단언했다.
사흘 길을 하루 반에 주파했다.
강아지 내삐를 위해 정차하는 것 외에는 거의 논스톱으로 달렸다.
오두막이 있는 숲 속으로 들어서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죽음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도 스멀거렸다.
그러나 어차피 여행이란,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을 하자는 게 목적이며 의미가 아닌가.
적어도 내 유랑의 목적은 그랬다.
지금 가고 있는 곳, 그 오두막에서 나는 그야말로 남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었다. 아무나 맞닥뜨리지 못 할 특별한 경험, 특히 한국인들은 상상도 못할 굉장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 아닌가.
드디어 우거진 나무들 사이 숨은 듯 자리한 오두막의 꺼먼 윤곽이 보였다.
출입문 위의 전구가 맥없이 흘리는 빛, 그 주변만 우중충하나마 색이 보였고 나머지 세상은 두터운 흑백이었다.
그 순간은 전조등을 켠 자동차 안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공간이 되었다.
내 흥분은 절정에 달했고, 에이브는 긴장이 절정에 달해 표정을 잔뜩 굳히고 있었다.
힐끗 나를 돌아다본 에이브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쌔미 너도… 정상은 아니야. 나보다 더 비정상인 것 같아.”
나는 짐짓 능청을 떨며 반문했다.
“누가 에이브더러 비정상이래?”
“내 부모형제도 그랬고, 형 친구들, 내 친구들… 많은 사람들이 그랬어.”
나는 그들을 비웃듯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비정상 아닐까?”
나는 에이브보다 먼저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오두막을 향했다.
“내삐, 너는 여기서 기다려, 알았지?”
나폴레온을 어르는 에이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강아지는 에이브를 아주 잘 따랐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오두막의 정체
어둠을 뒤집어쓴 오두막은 으스스해 보였다.
약해지려는 내 마음을 다잡았다.
“난 잃을 것 없는 무서운 인간이야.”
문 앞에 당도해, 다시 한번 나를 다잡으며 꼴깍! 침을 삼켰다. 그리고 오두막의 삐딱한 나무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하~~~이!!!”
과장되게 활짝 핀 미소로, 과장되게 명랑한 음성으로, 고함을 치듯 인사를 했다.
에이브가 잽싸게 내 앞을 막아섰다.
“에, 에이 형제들!! 나야, 에이브!”
그는 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더 부산한 몸짓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사내들이 에이브의 손을 잡으며 덤덤한 인사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을, 그러나 마음에 굉장한 상처를 주었을, 그 사람들이었다.
엉겁결에 뒷전으로 밀려난 나는 천천히 안을 살폈다.
세차게 밀려온 파도 같은 실망이 순식간에 전신을 때렸다.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 펼쳐진 광경은 내 상상에서 멀어도 너무 먼 것이었다.
허연 망토의 드라큘라, 마녀의 흰 두건을 쓴 괴물들이 활활 증오를 태우는 곳이 전혀 아니었다.
한 손에는 맥주 캔을, 또 한 손에는 큐대를 들고 낡은 테이블에 굴러 다니는 공을 따라 시선을 굴리는 남자들,
구석에 놓인 포마이카 상에 둘러앉아 느릿느릿 카드놀이를 하는 또 다른 남자들,
그것은 마냥 재미없는 촌놈들의 한 조각 일상일뿐이었다.
에이브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She’s mine, my everything! (내 여자, 내 전부야)”
그는 필사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말은 또렸하고 유창했다. 한 마디도 더듬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를 지키려고 자신을 내던지는 듯한 에이브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 나는 딴청을 부렸다.
“하우디.”
에이브의 형인 듯한 남자가 말했다.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툭 던진 한 마디였다.
어정쩡하게 손을 약간 쳐들다 어색하게 떨구는 사내들도 있었다.
어수선하게 시선을 보내던 그들은 곧 하던 짓으로 되돌아갔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이 김새는 분위기는? 이건, 아니잖아!”
잔뜩 기대하며 달려온 1,300마일의 끝이, 고작 당구치고 카드놀이 하는 산골 노친네들과의 맹물 같은 대면이라니.
내 지옥 같던 호기심이 민망할 정도로 풀이 죽으며 노여움까지 생겨났다.
‘제기, 적대감이라도 보이지… 노려보며 경멸스럽다는 표정이라도 짓지…’
나는 맥주 거품처럼 허무하게 흩어지는 흥분을 마른침과 함게 꿀꺼덕 삼켰다.
“옘별…!”
에이브의 형이 땟국에 절은 붉은색 쿨러에서 황갈색 음료수 캔을 꺼내 나에게 다가왔다.
“이거…시원해요.”
나는 엉겁결에 그가 내민 음료수 캔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은 서둘 필요가 없었다. 갈 때와 달리 여유로운 운전이었다. 밤길이라 더 여유를 가졌다.
4시간을 넘게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망했어?”
미시시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에이브가 먼저 침묵을 열었다.
강물에 떨어져 일렁거리는 가로등 그림자를 보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 아주 많이.”
또 한 동안 침묵하다가 그가 말했다.
“고마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어서 나는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형을, 용서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니었어.”
나는 그의 입술을 응시했다. 그가 계속했다.
“전혀, 용서하지 못했어. 아주 많이 미워하고 있었어.
그런데 아까, 너한테 그 음료수 꺼내 주는 걸 보고, 그 미움들이 지워지는 것 같았어.”
내 손에는, 그의 형에게 받은 음료수 캔이 그대로 들려 있었다. 왠지 그걸 마셔야 될 것만 같아 캔을 따서 입으로 가져갔다. 닝닝한 맛이었다.
에이브가 얘기를 계속했다.
“오늘, 쌔미한테도 그런 짓을 하면… 절대로 참지 않으려고 했는데…”
비로소 가슴이 철렁하며,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속으로 자책했다.
“나 때문에 에이브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잖아.”
진작에 그걸 생각하지 않은 내가 민망해서 몹시 화가 났다.
다시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뱉어내고 싶을 만큼 지독한 맛이었다.
“그 음료수 그게, 형의 사과였어.”
에이브가 음료수 캔을 보고 있었다.
“내가 꼭 받고 싶었던 형의 사과… 오늘, 그런 식으로 받은 거야.”
뱉아버리고 싶었던 역겨운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고마워, 쎄미 덕분이야.”
목구멍을 타고 내리는 액체는 이제 상큼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을 마친 에이브의 얼굴에는 잠시 슬픈 빛이 드리워졌다.
떠나간, 떠나야만 했던, 옛사랑이 다시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나도 잠시, 마음 떠나간 내 사람을 생각했다.
미워하기엔 너무 먼 곳에 있고, 잊어버리기엔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람들, 지워지지 않을 아픈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놓아줘야 할 이름들이었다.
새 이름을 부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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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준비를 했다.
에이브가 손을 보탰다.
준비를 마친 내 자동차 앞에 서서 마지막 커피를 나누었다.
“넌 정말, 특별해.”
에이브가 진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우린 둘 다 특별해… 둘 다 비정상이고.”
내가 약간 농담조로 말했다.
“누, 누가 쌔미더러 비정상이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비정상이지.”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내가 들어 본 가장 큰 웃음소리였다.
나도 가장 큰 웃음소리를 냈다.
“바이 에이브.” 내가 손을 내밀었다
“바이, 쎄미.”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자동차 문을 열다가, 나는 문득 되돌아 섰다.
“내 이름은, 해원이야. 에이취, 에이, 이… 더블유, 오, 앤… 해-원.”
그가 가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속으로 내 이름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 또는 최소한의 예의가 그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시동을 걸고, 차창문을 올리는데 그가 소리쳤다.
“바이, 해이원!”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