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밝혔듯이, 내 여행은 계획도 행선지도 없는 충동적인 것이라서 두서가 없다.

2002년도에 떠났던 첫번째의 미국횡단은 23년이나 지난 일이라 더군다나 앞 뒤가 없다.
그렇다고 거짓이거나 왜곡되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순전히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글이라 시간적인 순서나 장소가 약간 헝클어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아칸소 다음의 오클라호마와 미주리 주를 건너뛰고, 뉴 멕시코 야영장에서 만난 남자를 먼저 얘기하는 이런 것 말이다.
그러나, 미주리 주는 단연코 마크 트웨인 마을과 동굴 이야기가 되겠는데, 그 이야기를 쓰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트웨인은 내 인생을 바꿔 놓은 작가다. ‘톰 소여’는 내 문학적 뮤즈다.
미국에 오자 말자 맨 먼저 달려간 곳이 미주리의 미시시피 강.
다리 위에 서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쐐한 콧잔등을 오래 문질렀더랬다.

트웨인 동굴은 내가 정보를 찾고, 계획을 세우고, 마음먹고 찾아간 유일한 여행지다.
동굴안을 구경하고, 야영지에서 밤을 세우며, 글썽거린 눈물의 무게와 색깔을 나는 표현해 낼 수가 없다. 도저히.
그래서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기억이 생생한 뉴 멕시코로.
트웨인은 나중에 쓸 수 있게되면, 그때 쓰기로 한다.    

텅 빈 야영장의 남자

그 야영지는 뉴 멕시코의 어느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피스로 보이는 건물도 있고, 군데군데 지붕이 덮인 정자들도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쉴만한 벤치와 테이블도 그 아래 놓여있었다.
이용료가 꽤 비쌀 것 같은 깨끗한 곳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웠다.
사방을 어둑하고 으스스하게 만드는 하늘의 구름탓인 것같기도 했다.
오피스 간판이 보이는 건물로 가 보았다.
굳게 닫힌 문에 ‘Closed’ 라는 사인이 붙어 있었다.
자율요금함을 이용하라는 건가보다 생각했지만, 요금함 박스 같은것도 없었다.
천천히 사방을 두리번거려보았다.
으슥한 야영지 한 켠에 버스 같은 대형RV 한대가 보였다.
문이 닫혀 있고 창문에 가림막까지 드리워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한쪽에, 자동차 꽁무니에 매달아서 끌고 다니는 캠퍼가 보였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나를 내다보는 듯한 사람의 모습이 어둑하게 보였다.
나는 강아지 나폴레온을 안고 캠퍼로 다가갔다.
안에 있던 사람이 문앞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50대로 보이는 순한 인상의 남자였다.
“오피스가 닫혔는데 어떡해야 될까요?”
내가 물었다.
“우, 우선 텐트를 치세요. 사용료는 나중에 줘도 괜찮아요.”
남자는 어쩐지 말투가 어눌했다.

아무도 없는 야영장에 혼자 남은 남자.
문득, 앨라바마 야영장의 수상한 관리인이 생각나 기분이 흐려졌다.
그러나 남자는 내게 안겨있는 나폴레온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헤이, 바디.”
나폴레온이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귀, 엽네요… 머리, 만져도 될까요?”
“이 아이가 괜찮다면 뭐…”
남자가 나폴레온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나폴레온의 꼬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자 내 경계심도 풀려나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거죠?”
느슨해진 내가 물었다.
“오, 오늘 밤에 폭풍우가 온다고, 다들, 시내로 내려 갔어요.”
그는 열심히 대답했다.
험한 날씨에는 낮은 지대, 호텔이나 모텔같은 건물안이 더 안전하다고 모두들 산을 내려갔단다.
“폭풍우가 와요?”
예기치 못했던, 난감한 일이었다.
사방은 이미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시내까지 내려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토네이도만 아니면, 여기도 괜찮아요.”
남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오래 야영장을 떠돌며 자연재해를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다.
목숨을 위협할만큼 심각한 폭풍우는 아닐것이라고, 그는 경험 많은 사람답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내삐가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니 믿어보기로 했다.

사방이 트인 평평한 자리 하나를 골라 차에서 짐을 내렸다.
방수포와 텐트를 꺼내 놓는데, 남자가 다가오며 고개를 저었다.   
“에에… 거긴 안돼요.”
의아하게 쳐다보는 내게 그가 계속했다.
“여, 여기는, 막아주는 게 없어서 좋지않아요.”
그는 내 작은 텐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캠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가제보를 가리켰다.
“텐트가 작아서, 저 아래가 괜찮겠어요. 줄을 기둥에 단단히 묶으면, 날라가지는 않겠어요. 지붕이 있어서 비도 막아 주겠고…”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가제보 아래 테이블에 바싹 붙여 텐트를 쳤다.

몰아치는 폭풍우

그가 캠퍼에서 뜨거운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우리는 나란히 벤치에 앉았다.
“내 이름은, 에이브라함, 이에요. 그냥 에이브라고 부르면 돼요.”
그가 커피잔을 손에 든 채 자기 소개를 했다.
“쌤.”
나는 짧게 대답하며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쌔미는, 마크 트웨인의 본명인 사무엘 클레멘스에서 생각해 낸 이름이었다.

그날 밤의 폭풍우는 굉장했다.

기둥에 묶인 텐트는 소금을 뿌린 미꾸라지처럼 야단스레 몸부림을 쳤다.
가제보의 지붕이 있었지만, 바람에 떠밀린 빗줄기가 사정없이 텐트를 후려쳤다.
내게 있던 모든 짐을 텐트 바닥에 쟁여 놓았지만, 텐트는 마른 종이처럼 흔들리고 구겨졌다.
두 손으로 문의 지퍼를 부여잡고 온 힘을 다했다.
혼쭐을 다 빼놓는것 같은 기나긴 밤이었다.
그런데도 내삐녀석은 텐트 한가운데 편안히 누워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
내가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거나 말거나 배를 보이며 벌렁 드러누워 단잠을 잤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쿡쿡 웃었다.
“동물은 위험에 민감하다는데, 내삐가 저렇게 천하태평인 걸 보면 이 폭풍우는 대수롭지 않은게 분명해.”
그런 생각을 하며 자꾸 웃었다.        

아침이 되자 폭풍은 마술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지퍼를 열고 비실비실 밖으로 나왔다.
텐트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기우뚱했다. 폴대 몇 개가 부러져 뒤틀리고 구겨진 모양새였다.
나는 가만히 텐트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얘기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마지막까지 잘 견뎌 줘서 정말로 고맙다.”
구입한 가격을 생각하면 참 오래, 유관하게 잘 썼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었다.
산을 내려가면 가까운 도시를 찾아 새 텐트를 장만하리라 생각하는데, 나폴레온이 콩콩 짖으며 내 뒤로 뛰어갔다.
돌아보니, 몇 개의 폴대를 손에 든 에이브와 달려간 내삐가 반가운 아침인를 나누고 있었다.
헤이, 바디.”
에이브가 나폴레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텐트가, 생각보다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어요.”
그가 텐트옆에 주저앉으며 폴대를 바닥에 놓았다.
아침에 내려가 사왔다고 했다.
왕복 두 시간은 족히 되는 거리인데…
푸석한, 그러나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쫀득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 웃었다.
“금, 금방 손볼 수 있어요. 그동안 내 캠퍼에 가 있어요.”
그는 나와 강아지를 데리고 그의 캠퍼로 갔다.
인형의 집 같은, 예쁘지는 않았지만, 올망졸망 갖출 건 다 갖춘 작은 살림집이었다.
조그마한 식탁도 있고 침대도 있었다.
식탁에 앉은 내 앞에 뜨거운 커피를 놓아주며 그가 말했다.
“이거 마시고, 저기, 침대에서 좀 자요. 그동안 텐트를 수리해 놓을게요.” 
‘낯 선 남자의 침대에 눕다니’ 말도 안된다는 생각은, 마셔버린 커피와 함께 금새 비워졌다.
밤새 폭풍우와 맞서 싸운 몸이 혓바닥에 닿은 솜사탕처럼 쪼그라들었다.
침대 모서리에 살짝 걸치기만 하려던 내 몸은 어느새 침대 가운데로 기어들어가 있었다.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졌던 나는 한 낮이 지날 무렵에 눈을 떴다.

그는 말끔하게 고친 텐트 앞에 앉아 새로 창조된 듯 깨끗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강아지 나폴레온도 그의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나를 돌아보는 에이브와 내삐의 눈이 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순한 눈빛들이었다. 새하늘처럼 깨끗해 보이는 시선이기도 했다.

남부 연합기

며칠 그곳에 머물렀다.
그의 캠퍼로 초대 받아 그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그의 커피에서는 독특한 향이 풍겼다. 그 향이 참 좋다고 했더니, 그건 깔루아 라고 하는 우유 술 향기라고 그가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듣는 게 좋았다. 그도 나와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는 장애 때문에 말이 어눌했고, 나는 늦게 배운 탓에 어눌했다.
서로의 어눌함, 공통의 장애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좀혀주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가 있었다.
그는 내가 나폴레온을, 아니 나폴레온이 내 성격을 닮은데가 많다고 했다.
순한 듯 날카로워서 거리를 허용해도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건 참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이브는 캠퍼를 타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유랑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부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머리를 다친 후, 말이 어눌해지고 종종 머릿속이 하얘지는 증상을 겪게되었다. 그 때문에 삶을 완전히 바꾸어야 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동차와 캠퍼를 장만했다. 장애인 연금으로는 그럴듯한 대형 모터홈 장만은 불가능했다.
유지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 얘기도 해 주었다.
테네시 산골짜기에서 문샤인이라는 밀주를 빚었던 부모님은 술과 담배와 노름에 취해 늘 싸우고 서로를 상처 냈다. 그게 지겹게 싫었던 그는 부모님이 했던 모든 것들을 멀리 했다.
커피에 넣는 깔루아도 끊을 것이라고 했다.
“깔루아는, 내가 떠난 뒤에 끊으면 좋겠네. 난 이 향이 좋은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지 뭐.”
그는 웃지않고 대답했다.

그날도 나는 에이브의 캠퍼에 초대받아 깔루아를 넣은 커피를 즐겼다.
그런데, 에이브가 전에 없이 심각해 보여 눈치만 보고 있는데, 드디어 그가 말했다.
“오늘은 어디 나가지 말고, 괜찮으면 내 캠퍼안에서 지내는게 좋겠어요.”
“…?”
“어제, 야영장에 이상한 사람들이 왔어.”
엊저녁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와 세 개의 텐트를 쳤는데, 텐트마다 남부연합기를 달았더라고 했다.
남부 연합기란, 백인우월을 주장하는 인종차별 주의자들의 상징같은 것이라는 설명도 해 주었다.
“나쁜 사람들이니 조심해야 돼.”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 못된 기질이 있는 나는 남부연합기가 펄럭인다는 텐트들이 보고싶어 안달이 났다.
그 나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들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에이브는 텐트의 뒷 쪽으로 나를 데리고 가 먼 발치로만 보게 했다.
실제로는 처음 보는 깃발이었다.
붉은 색 엑스위에 별이 그려진, 별 볼것만 있는 대수롭잖은 깃발이었다.
텐트를 드나드는 사람들 역시 그랬다.
별 다른 차림새도 장식도 없는, 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에이브의 지나치게 심각한 표정이 별 다르게 보였다.
“저 사람들,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지,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야.”
에이브는 선한 사람이었다. 그가 저들을 나쁘다고 강조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드디어 그 이유를 알아냈다. 놀라운 이유였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 그러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헤어져야 했던 그 여자 때문이었다.
테네시에 사는 형과 패거리들은 동생의 여자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기어이 그녀를 떠나게 했다.
“형이, 쿠 클럭스 클렌이야. 지금도.”
“KKK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나는 전률을 느꼈다..
에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 밤, 테네시 숲 속 오두막에서 모인다고 했다.
세상이 뒤집히는 놀라운 얘기였다.
“그 오두막에도 저런 남부연합군 깃발을 달았어?”
“응.”
“나치 깃발도?”
에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자. 나 그 오두막에 가 보고 싶어.”
기습같은 내 애기에 에이브의 눈이 보름달처럼 둥그래졌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