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 더위
어둠이 짙어진 숲 속의 무더위는 굉장했다.
하늘의 별들까지 녹아내리는 것 같은 찐득찐득한 열기에 나폴레온은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렸다.
해가 지면 더위가 식을 줄 알았다.
그러나 빽빽한 나무들은 열기를 꼭꼭 가둬놓은 채 바람은 한 오라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텐트 윗부분의 환기창까지 다 열어 놓았지만, 눅진한 하늘에서 명멸하는 별빛조차 후끈거리는 밤이었다.
강아지 내삐가 별을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낑낑거렸다. 녀석이 그런 소리로 칭얼거리는 건 처음이었다.
“나 때문에 니가 괜한 고생을 하는구나.”
녀석이 하도 안쓰러워, 나는 이제 더위도 괴로움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작은 선풍기라도 준비 했어야 했다.
하지만 9월의 더위가 이 정도일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대륙의 자동차 여행에는 소형 히터와 선풍기가 필수품이라는 얘기를 명심 했어야 했다.
설마하고 흘려들었던 게 큰 실수였다.
미국 동남부의 눅진한 더위는 겪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정말로 유별난 것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맹렬한 더위에 강아지도 나도 잠들지 못했다.
종이 한 장을 찾아내 강아지에게 부채질을 해 주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녀석의 칭얼거림이 잠잠해지면서 쌔근쌔근 코고는 소리가 이어졌다.
더 없이 고맙고 아름다운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자 팔이 아파왔지만 부채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녀석이 깰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양 손을 번갈았지만 견디기 힘들만큼 아파왔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 참아냈다.
날이 밝아오는 즉시 텐트를 걷어 야영장을 떠났다.
첫 여행의 첫날 밤은 악몽이었다.
그러나 강아지와 내 유대감은 더없이 돈독해진 것 같았다.
마트에 들러 가장 작은 선풍기를 샀다.
작은 히터도 샀다.
‘아직 9월인데…’ 하다가 그 전날 만났던 살인더위처럼 느닷없이 맞닥뜨릴 깡추위도 미리 대비하기로 했다.
미시시피 주의 허리를 가로질렀다.
집에서 가까운 주들은 대충만 보며 지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둘러봐도 될 일이었다.
아칸소 주로 들어서자 바다보다 망망한 농지가 마법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180도로 맞닿아 각도기 모양을 하고 있는 하늘과 지평선.
갖가지 모양의 구름들이 평원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신비의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지평선과 나 사이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도 건물도 없는 까마득한 평지는 비옥해 보였다.
평원을 달리는 자동차는 마치 지평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점차 감각이 마비되던 내 시선은 깊은 우울속으로 갑작스레 미끄러져 내렸다. 호흡이 가빠지며 눈물이 흘렀다.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길가에 자동차를 세웠다.
조수석의 제 의자에서 펄쩍 뛰어 건너온 내삐가 내 얼굴을 핥았다. 내 얼굴의 눈물을 핥았다.
내삐와 함께 차에서 내려, 바다보다 넓을 것 같은 농지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바다보다 망망한 대평원이었다.
바다에는 물결의 움직임이라도 있지만, 미동도 없이 아득하기만 평원은 온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또 눈물이 고였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마 아버지, 그리고 오빠를 불렀다.
이빨로 베어낸 무조각처럼 울퉁불퉁 구부러진 모양의 조각 땅에서, 자갈을 골라내고 마른 흙덩이를 부수던 늙은 부모님과 병약했던 오빠의 모습이 못 견디게 아픈 모습으로 떠 올랐다.
“이 땅 한 귀퉁이만 떼어갈 수 있었다면… 아니, 이렇게 넓은 땅을 생전에 한번 보기라도 했다면… 아니아니, 이렇게 넓은 땅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했어도 그 분들은 풍요를 느꼈을 텐데. 부자가 된 마음이었을 텐데…”
그 척박한 비탈밭과 조각 논에서 고생만 했던 오빠와 부모님의 고단한 삶이 전적으로 내 탓인양 마음이 무너졌다.
“진작에 미국에 올 걸… 그랬으면 이 땅을 구경이나마 시켜드렸을 걸…”
파도가 없는 바다를 헤엄치듯 평야를 미끄러져 나가 국유림에 가까워지도록 길은 그렇게 순한 평지였다.
국유림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았을 때 자동차의 연료 탱크는 절반 가까이 차 있었다.
몇 시간의 주행은 거뜬할 것 같아서 보이는 주유소를 그냥 지나쳤다.
국유림에 진입하기 전 자동차에 연료를 채우라는 안내문도 무시했다.
구불구불 한적한 산길은 문명이 배제된 마냥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길 양편에는 자그마한 야생화들이 화동이 뿌린 꽃가루처럼 널려 있었고, 열어놓은 차창으로 날아드는 새소리들은 환영의 노래같았다.
자동차 속도를 한껏 줄였다.
자주 차에서 내려 풀꽃들의 웃음도 감상했다.
천천히 꽃 길을 흐르면서 신부가 되어보기도 하고,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겹겹으로 두르고 있는 능선들을 보면서는 든든한 성벽 안에서 보호받는 귀족의 안도감도 느껴보았다.
노란 불의 공포
그러나 그 안도감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연료 계기판에 노란 불이 켜졌다.
‘설마, 자동차가 멈추기 전에 주유소가 나오겠지’ 했던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능선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이번에야 말로 마을이든 평지든,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능선을 넘을 때마다 같은 기대를 했지만 꼭대기에 다다르면 여전히 같은 능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하다못해 들짐승도 보이지 않았다.
적적하고 불안했다.
드디어 내 가슴에도 불이 들어왔다. 새빨갛게 타는 불이었다.
“아이구 주님…”
한동안 찾지 않았던 그 분의 이름이 저절로 나왔다.
“제발, 주유소 까지만 무사히 데려다 주세요.”
세상 없던 간절한 기도가 올려졌다.
드디어 불쑥 낮아진 언덕 자락으로 자동차가 내려갔다.
광활한 농지 한 귀퉁이에, 버려진 듯 웅크리고 있는 낡은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반가움에 앞서 으스스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오코너의 소설 ‘좋은 사람은 드물다’가 생각났고, 탈옥수들이 숨어있던 그 위험한 오두막의 이미지가 건물 위에 겹쳐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분위기가 불러낸 기억의 파편인 것 같았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건물로 다가갔다.
좁은 흙마당에 지저분한 녹색의 길쭉한 철제 깡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호스가 연결된 손잡이가 있는 걸로 보아 구식 주유기가 분명했다. 뿌연 흙먼지가 더께로 앉은 더러운 손잡이를 보자 그냥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자동차의 노란 경고등이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아주 멈춰버릴 것이라고.
주유기 앞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배부른 소처럼 멀뚱하게 나를 맞았다.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걸로 보아 만물상 구멍가게로 짐작되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농가들을 위한 시골 편의점인 모양이었다.
“저거, 자동차 기름 맞나요?”
내 물음에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돌아서서 나오려고 하자 남자가 느리게 말문을 열었다.
“That’s 100% homegrown corn fuel. I make it myself.”
자신이 재배한 옥수수로 직접 정제한, 순도 백퍼센트 기름이라는 얘기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넉넉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 옥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하던 중부의 깊은 산골에서는 낡은 증류기로 옥수수 연료를 만들던 농가들이 있었다.
2020년 기준, 미국의 옥수수 에탄올 생산량은 약 26.6%에 달할 정도로 컸었다. *
옥수수 순기름은 휘발유 가격보다 두 배는 비쌌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다섯 개 주를 건너오는 길 위에서,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많다’는 생각이 내 안에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망아지같은 나였다. 어린 망아지가 세상밖으로 나가기를 조르듯, 나도 이 넓은 세상을 오래 달리고 싶어했다. 망아지의 편자같은 자동차의 건재함은 필수였고, 나와 강아지와 자동차의 에너지를 위한 비용도 신경을 써야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 부근에 주유소가 있는지 물었다.
고속도로로 나가면 주유소는 많다고 남자는 말했다.
쪼오끔만 가면 고속도로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Just a piece further.”
남자는 ‘쩌어~스트’에 힘을 주며 멀지 않은 거리임을 강조했다.
나는 옥수수 기름을 조금만 넣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시골 사람들의 거리 감각이란,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한국의 시골 길이 십리는 되듯, ‘쩌어스트 어 피스…’라는 미국의 시골 길도 그랬다.
흙먼지가 날리는 시골길이 한없이 계속되었다.
능선이 파도처럼 이어지던 국유림의 불안이 되살아나고, 이러다 진짜 탈옥수들이라도 만나는 게 아닌가 무섬증도 들었다.
옥수수 기름을 좀 넉넉하게 넣었어야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연료탱크의 노란불이 다시 켜지기 전에 주유소 간판이 보였다.
세상 없이 깊은 감사기도가 올려졌다.
그날 이후 나는 주유소만 보면 기름을 넣었다.
연료 탱크가 절반이 되기 전에 주유소를 찾는 습관이 생겼다. 좋은 습관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