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짜 엄마를 딱 한 번만 만나보겠다고 엄마를 조른 적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데, 어디 가서 누굴 만난다고 그러냐?”
엄마는, 시답잖은 소리 한다는 듯 가볍게 받아넘겼다.
“주워다 키운 엄마 말고, 나를 낳아 준 엄마 말이야.”
나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낳아준 내 엄마가 정말로 보고싶었다.
그제야 엄마가 화들짝 분노를 터트렸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 말랬더니, 그 인간이 기어이 애를 이 지경으로 맹그네…”
미운 털이 빼곡한 ‘그 인간’은 둘째 형부였고, 그는 즉시 도마에 올라 난도질을 당했다.
그러나 칼질을 당해도 억울할 일은 아니었다. 둘째 형부가 풍파의 원인이었으니까.
“오늘 여기 오다가 너그 엄마 또 봤다. 널 보고싶어서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다 짓물렀더라.”
형부는 올 때마다 꼬박꼬박 다리 밑에 사는 내 생모 소식을 구구절절 전하며 나를 애달프게 했다.
”어떠냐, 진짜 엄마 만나게 해 줄까?”
정색을 하고, 한결같은 진지함으로 전하는 그의 말을 나는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다리 밑의 엄마에 대한 연민이 자꾸 커지고 궁금증과 그리움도 생겼다.
갈수록 자라나던 그 감정들은 급기야 더 참지 못하고 입밖으로 터져 나왔다.
“한 번만… 진짜엄마 얼굴만 딱 보고 금방 돌아올 게, 응?”
어르고 달래던 엄마도 내 고집스러운 간청에 참지 못하고 둘째 형부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그 눔, 다시는 내 집에 발 들여놓지 못하게 해라!”
형부의 방문금지령은 집안을 시끌벅적하게 했다.
오빠와 언니는 내가 엄마에게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고 열심히 증언을 했고, 친척 아지매들도 엄마가 내 생모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너는 갓 낳았을때부터 아주 예뻤어.”
“눈이 똘망똘망 총명해 보였어.”
“도토리처럼 탱글탱글 야무져 보였어.”
온갖 좋은 말로 나를 달랬지만 나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이유들은 얼마든지 많았다.
나는, 나이도 생일도 그리고 이름도 전부 불분명했다.
복날 무더위에 태어난 말띠 라는데 호적은 춘삼월에 태어난 개띠로 되어있고, 이름도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호적의 이름이 달랐다.
생김새도 나만 달랐다.
오빠 언니들은 엄마를 닮아 크고 시원스러운 이목구비에 검은 머리숱이 풍성한데, 나는 작고 오밀조밀한 생김새에 숱 없는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다.서양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엄마와 언니를 ‘참 미인이시다.’ 라고 칭송했고, 두메의 촌사람들은 내게 ‘어쩜 저리 그림 같을꼬!’ 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림 같다는 그 소리가 정말로 듣기 싫었다. 눈 코 입이 점찍어 놓은 것같은 동양화 속의 여인들은 절대로 미인이 아니었다.
“오빠랑 언니는 예쁜데 나는 왜 안 예뻐?”
볼멘 소리로 엄마에게 묻곤 했다.
“누가 너를 안 예쁘대? 내 보기엔 우리 막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거짓말 마! 나만 엄마를 안 닮아서 안 예쁘잖아!”
“코하고 귀가 똑 닮았는데 뭔 소리야?”
쌍꺼풀 없는 눈은 차마 닮았다고 우기지 못했다. 아버지를 닮았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날마다 싸우는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공공의 적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은 소외나 모멸로 여겨졌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친구에게 덜컥 줘 버리고 온 날도, 엄마는 화를 내며 말했다.
“애비 닮아서, 남 주는 건 잘하지…”
회초리보다 따가운 말이였다.
엄마는 내 생일과 이름이 다른 것도 아버지 탓이라고 얘기 했다.
나는 쉰둥이가 흔치 않던 시절에 쉰을 바라보는 엄마의 뱃속에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앉은 씨앗이었다.
엄마는, 할 수만 있으면 낳지 않으려고 수를 써 보았다.
부른 배를 감추려고 배를 꽁꽁 동여 매고, 입덧이 날까 봐 음식도 절제했다.
그러나 나는 끈질기게도 숨 줄을 이어갔다.
잉태된 내게 대한 엄마의 기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딸 셋에 외아들을 둔 엄마는 이 늦둥이가 행여 조상이 준 선물일지 모른다는 은밀한 소망을 품기는 했었다.
그러나 허전한 아랫도리로 태어난 신생아는 형편없이 작고 앙상했다.
낙태를 시도한 후유증인 것 같아 죄책감도 느꼈지만, 쓸데없는 계집애 하나를 더 보탠 상실감이 훨씬 더 엄마를 섭섭하게 했다.
엄마는 죽을 것처럼 심하게 앓았다. 물론 수유도 하지 못했다.
언니가 끓여주는 미음으로 연명하는 갓난아기는, 앓는 소리도 울음소리도 없이 잠만 잤다.
죽었나 하고 들여다보면 아직도 덜 꺼진 숨이 남아있었다.
“에이그, 인간 구실 못하겠구만.”
엄마를 문병 온 친척들은 구석의 아기를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엄마는 내 잦은 병치레가 그 여편네들의 방정맞은 입살(煞)때문일지 모른다는 말도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또래들과 펄쩍펄쩍 뛰노는 나를 불현듯 발견하고 아버지께 소리쳤다.
“아이구, 애가 저렇게 컸네요. 얼른 가서 출생신고 하소.”
3킬로 거리에 장이 서는 날, 막걸리로 불콰해진 아버지가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이 내 출생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러자 면서기는 뜻 좋은 한문으로 내 이름을 짓고, 아버지는 동의를 했다.
나는 두 개의 이름과 두 개의 나이와 두 개의 생일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생일은 두 개나 되었지만 나는 한 번도 생일축하라는 걸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생일축하라고 해봤자, 잡곡에 약간의 쌀을 섞은 밥을 주발에 수북이 담아주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날을 기억해 주는 일조차 드물었다.
아이도 제 생일을 기억하는 일이 드물었다. 달력도 없는 시절이었으니 어디 표시를 해 둘 곳도 없었다. 생일이 지난 후, 어느 날 불현듯 생각이 나면 그게 그렇게 억울하고 약오를 수가 없었다. 내 출생에 대한 의심이 부쩍 더 커지는 날이었다.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오빠 우선, 오빠 중심이었다.
맛있는 것이 생기면 언니와 나 몰래 오빠에게 주었다.
마음 약한 오빠는 그걸 엄마 몰래 우리에게 갖다 주었다.
냠냠 맛나게 먹어 치우는 언니와 나를 보며 오빠는 말했다.
“나도 한 입만 주라.”
“싫어!” 언니와 나는 동시에 소리쳤다.
그걸 다 먹을 때까지 오빠는 애원하고 우리는 거부했다.
한 번은 그걸 엄마에게 들켜 우리 셋 다 혹독하게 혼이 났다.
오빠는 바보 같다고, 우리는 인정머리 없는 못된 것들이라고, 함께 종아리를 맞았다.
그래도 나는 막내라서 언니들보다는 훨씬 대우를 받았지만, 내 출생에 대한 의혹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여름방학 때, 아침 일찍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다.
방학이라 마음껏 늦잠을 즐기고 싶었던 나는 못들은 척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텃밭에라도 갔다 온 듯, 손에 야채를 든 엄마는 몹시 나를 몰아세웠다.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뒷동산의 주인 없는 무덤 앞에 기대 앉아 청승을 떨었다.
“난, 주워 온 딸이 틀림없어.”
쿨쩍쿨쩍 눈물을 흘렸다.
“얼른 내려오너라. 내려와서 밥 먹자!”
엄마가 동산을 올려다보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뜻밖에도 굉장히 다정한 목소리였다.
의아했다.
엄마는 쌀 섞은 밥이 수북이 담긴 주발이 놓인 상 앞에 나를 앉혔다.
“먹어라.”
엄마가 말했다.
“뭐지?” 속으로 생각하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어서 먹어라. 속상해 하지 말고 마이 먹어라.”
그리고 못마땅한 듯 엄마를 보며 말을 계속했다.
“생일날 아침에, 밥은 안 멕이고 심부름이나 시키니 애가 심통이 안 나겠어?”
엄마가 좀 미안한 듯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그제서야 그걸 깨달은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위로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자, 커다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거 봐, 난 주워 온 딸이 맞잖아, 잉잉…”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게 더 명확한 기정사실이 되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당신 밥상의 반찬을 내 밥그릇 위에 놓아주면서 거친 손바닥으로 내 눈물을 닦았다.
“누가 우리 딸을 주워 왔다 그랬나…?”
아버지는 ‘다리 밑의 엄마’ 사건이 있을 때 출타 중이어서 그날의 분란을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혀를 차며 나를 나무랐다.
“또 씰데없는 소리 한다. 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라.”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밥을 떠 넣었다.
그러면서 또 어깃장을 부렸다.
“그러믄… 쩝쩝! 나는 지금 아홉 살이야, 다섯 살이야?”
엄마가 빽 소리쳤다.
“밥이나 먹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유세를 떨었다.

우리때 다리밑에 주워왔다고 놀리는 장난을 어른들이 많이했었죠. 알고보면 엄마 다리밑?^^ㅎㅎ
내 소중한 첫번째 방문자의 첫번째 댓글.
행복해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