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하자.
내 글은 대중목욕탕. 발가벗자, 원죄 이전의 이브처럼…”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이다 –

차별 당하는 기억
내 기억은,
싫은 것과 좋은 것을 차별하여 저장하려는 상당히 불공평한 기질이 있다.
같이 경험했던 사람들은 다 기억하는데 나만 까맣게 지워진 일들이 아주 많다. 주로 나쁜 기억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어릴 적의 낡은 초가집이 오빠와 언니에겐 지옥 같은 곳으로, 내게는 천국 같은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 따위다.
그 초가집 대들보와 천장 사이에는 광으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다.
집 중앙의 대청마루 위에만 들보와 석가래가 보이는 천장 그대로이고, 마루를 비껴난 천장에는 공간을 두어 잡동사니들을 넣어뒀다.
그 어둑스레한 공간에 구렁이들이 들어앉았다.
오빠와 언니의 기억에 의하면,
스르르 휙휙 쥐들을 좇는 구렁이의 비늘이 밤의 호롱불 빛에 번뜩이곤 했었다.
대청마루에 모인 가족들은 그걸 보면서도 그저 침묵했다. 혹여 달리던 구렁이가 실족해 떨어질까 봐 누웠던 사람이 일어나 앉을 뿐, 그걸 어떻게 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뱀은 용이 될 수도 있는 신령한 것으로, 집안의 그것은 지킴이로 여겨져 잡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보호를 받았다.
훗날에도 오빠와 언니는 그 일을 이야기하며 몸서리를 쳤지만, 나는 구렁이 기억은 전혀 없었다. 전혀!
내가 너무 어려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그 집의 구조를 세세히 기억한다.
마루와 천장의 모양과 색깔도 기억하고, 누가 어느 위치에 즐겨 앉았다거나, 문지방을 베고 누웠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것도 다 기억한다.
마당의 디딜 방앗간도 기억하고, 그 옆에 작은 연못과 오리 세 마리, 또 그 옆에 배나무 한 그루, 반대편에 감나무 일곱 그루, 꼭대기의 까치밥까지 아주 선명하다.
언니 오빠와 개구리를 잡아 오고, 깡통의 개구리들을 오리에게 던져 주면, 꽤액 꽥 자맥질 하던 오리들의 노란 갈퀴 발… 그런 모든 기억들은 더 없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언니 오빠의 끔찍한 구렁이와 나의 오리들은 완연히 달랐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아름다운 집에서 귀하게 자란 공주님인 줄 안다.
언니는, 내가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현실과 상상이 구분 안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떤가?
그날 밤의 빗소리
나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흔한 일이었다. 산골 마을에는 국민학교 못 다닌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좀 특별했던 것 같다.
“야는 공부를 시켜야만 됩니다.”
몇 분 선생님들이 부모님을 찾아 와 통사정을 하셨다.
그게 통하지 않자, 문예반 담당이셨던 이두직 선생님은 옆집 후배를 통해 도서실의 책들을 골라 보내주셨다.
“열심히 읽어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러나, 소 먹이고, 꼴 베고, 뽕 따고, 고추 따고… 그렇게 해를 넘겨야 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는 삶의 맛과 의욕을 허물어뜨렸다.
돈 없어도 다닐 수 있다는 천막학교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다.
집에서 너무 멀리 있어 기차를 타야 했고, 결국 집을 떠나야 했다. 도망쳐야 했다.
국어 선생님이라는 분이 자기 집에 와서 지내라고 하셨다. 당장 그렇게 했다.
어린 남매를 둔 사모님은 병약해서, 집안 일은 모두 내 몫이었다.
아직 고무장갑이 없던 때였다. 설거지나 청소보다 기저귀 빨래는 몇 배나 힘들었다.
찬물에 담그고 아무리 비벼도 노란 똥오줌 자국은 빠지지 않았다.
아침 설거지를 끝내고 학교로 달려가면 첫 시간 수업은 끝나고 있었다.
그래도, 포도송이 같은 꿈이 그 모든 것들을 견디게 해 주었다.
어느 비 오는 밤,
옆방에서 지내시던 생물선생님이 장거리 출타를 하셨던 밤,
국어선생님은 만취가 되어 내 방으로 오셨다.
“여자가 되는 길이란다…알아야 되는 거란다.”
술 냄새가 진동하던 그 소리, 소리들…
울고, 소리치고, 할퀴었지만, 세찬 빗소리가 모든 걸 휘감았다.
어찌어찌 생물선생님 방으로 달아났지만,
그곳까지 따라온 만취자에게 나는 꺾였다.
그 순간의 빗소리는 세상을 무너뜨릴 듯 요란스러웠다.
아주 오랜 세월, 그 밤의 기억은 세찬 빗소리로만 가득했다.
떠나 보내기
내가 견뎌 온 날들이 대견스러워, 나 스스로 나를 다독이고 싶어졌다.
나를 쓰다듬고 안아주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랬더니,
죽은 듯 숨 죽이고 있던 검은 기억들이 다투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밤의 기억은 더한 기억까지 달고 나왔다.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언뜻 국어선생님 모습에 겹쳐지던 또 한 사람을 보았다.
한참 더 어렸던 나를 짓뭉개던 남자의 윤곽… 다만 윤곽뿐이었다.
‘해리성 건망증(Dissociative Amnesia)’의 일종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까 봐, 기억을 차단하고 보호하려는 내 기특한 본능, 뭐 그런 의미인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견디고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그런 기억들을 놓아준 모양이었다.
긴 세월 갇혀 있었던 내 기억들은 흠 없이 생생했다.
쇠하거나 흐려짐이 없었다.
함께 갇혀 있었던 울음이 기억보다 먼저 폭발했다.
오래도록 울었다. 해가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 울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퇴색도 노화도 하지 못하고 늘 젊어야 하는 내 기억을 위해,
마르지도 줄어들지도 못하는 내 지치지 않는 눈물을 위해,
너에게라도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