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는 ‘먹는다’고도 하고 ‘든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이 먹고 똑 같이 드는 공평한 것이다.
아이는 더 빨리 더 많은 나이를 먹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면 모든 금지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
할 수 있는 게 무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무진장 많아서다.
나도 그랬다.
어린 날의 세월은 왜 그리도 늑장을 부리며 절뚝거리는지,
설날에는 떡국을 두 세 그릇씩 받아먹고
남들보다 나이를 더 많이 먹은 기분을 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면서 나이는 점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변해 간다.
그토록 나이를 갈망하던 아이는 나이에게 먹히는 어른이 되고,
인색하게 주어지던 숫자의 나이는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거워지던 나이는 황혼기가 되면서 갑자기 날렵해진다.
갖가지 애환들을 짊어지고도 가볍게 시간을 넘어와 수북수북 쌓인다.
날개를 달고 훌훌 나는 것처럼 빠르게 날려와 숫자를 늘인다.
어제 같던 60대의 기억은 안개바다처럼 아슴하게 물러나며, 70대의 오늘과 교대를 한다.
삶의 끝자락에 가로 놓인 그 강변이 어느새 코 앞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그냥 하는 소리인 것 같다.
늘어난 나이에 갇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보이는 세상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이를 망각하는 기억상실에 걸린 탓이다.
아틀랜타 외곽 도시에서 내 나이에 대한 기억상실은 중증이 되었다.
50대에 Technical College를 거쳐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은 말기에 이르러,
19-20세 아이들과 아무런 거리감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미국은 나이를 묻지 않는 나라다.
관공서에서도 생년월일이나 사회보장 번호만 요구했다.
그러니 일상에서 나이를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산드라의 부모님은 더군다나 내 나이를 잊게 해 주었다.
그들은 나를 딸아이와 똑같은 20대 여대생으로만 대했다.
나는 한국적인 정서 그대로 산드라의 어머니를 “Mom(엄마)”이라 불렀고,
그들도 나도 그것을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신분증을 본 산드라가 큭큭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What?”
나와 얘기를 주고받던 산드라의 엄마가 물었다.
산드라는 입안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Nothing.”
그녀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자 산드라는 물고 있던 웃음을 푸아! 뱉어냈다.
“말도 안 돼. 우리 엄마가 너보다 두 살이나 어려!”
그 후 “헤이 킴!”이라고 하던 산드라의 호칭이 “헬로 미스 킴”으로 바뀌었다.
장난기 섞인 것이었지만 괜히 슬펐다. 스스럼없던 친구가 나이라는 벽 뒤로 물러선 것 같았다.
내가 갑자기 늙은이가 된 느낌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국어로 강의하는 클래스를 수강하던 첫날의 일이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한인 남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다른 사람은 없었다.
“저 말이에요?”
“예.”
나이를 묻는 사람은 간혹 있었지만 ‘연세’를 묻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오래 앓던 기억상실에서 깨어난 아이가, 늙은이로 변모한 자신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연세를 왜 물어요? 내가 어리면 애 취급하게요?”
“아니, 연세를 알아야 어르신으로 대우…”
나는 그의 말을 얼음칼이라도 되듯 야멸차게 잘랐다.
“난 연세가 아니라 나이를 먹었으니 대우 안 해도 됩니다! 맘 내키는 대로 하셔요.”
사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 나이를 잘 모른다. 계산을 해봐야 된다.
출생일과 호적이 4년이나 다르게 되어 있고,
한국 나이와 미국 나이 사이에서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흔히들 말하는 ‘나잇값’이라는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이의 값이란, 먹은 음식물을 소화하듯 먹은 나이를 소화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 소화시켜 사회의 거름이 되라는 뜻일 게다.
나도 그러고는 싶다.
그러나 나이 상실증을 앓는 혈혈단신의 나는 ‘철없는 어른이’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냥 좋은 어른아이나 되자고, 나이 대신에 나의 마음을 먹는다.
세상에 해악이 되지는 말자고 먹은 마음을 다진다.
잘 난 척하기보다는 못난 척,
찡그리기보다는 미소를,
싫은 소리보다는 좋은 소리를,
무엇보다도,
과한 욕심은 절대로 부리지 말자고
수시로 물러지는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는다.
나이란,
어릴 때는 많이 먹고 빨리 자라기를 갈망하고
중년에는 무게를 감당하며 상생하려 노력하고
노년에는 늦추고 피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결코 늦출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그 나이는 싫지만 억지로 먹어 탈이 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노년의 나이는 좋은 마음을 같이 먹어야 탈이 나더라도 추스를 수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비워 낸 마음은 효과가 가장 뛰어난 약이 될 것이다.
나이로부터도 자유로워진, 노년의 착한 아기로 되돌아가는
순한 그 마음 말이다.
